푸짐아, 밥 안 먹니? 커서 뭐 될래? 조마조마, 말하지 마! 옥탑방 아저씨 지옥에 간 두 소년 소꿈? 돼지꿈? 푸짐이는 괴로워 꼬마 철학자 ......
열 살에서 아흔 살까지 읽고 감동하는 '1090 동화시리즈'에서 세 번째 책이 나왔다. 이미 시를 통해 풍성한 유년의 경험으로 동화적 상상력을 보여 준 바 있는 반칠환 시인이 아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하늘궁전의 비밀>이다. 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무엇의 힘으로 굴러가고,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그리고 어떻게 화합하는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철학적인 궁금증은 우리 아이들이 홀로 끙끙대며 고민했거나, 반대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질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 해답을 찾아간다. 바로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들어 온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는 식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넘어 선 철학적인 생명 이야기이다. 모두 소중한 생명인데도 서로 먹고 먹히는 세상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따뜻한 해답을 이 책은 보여 준다.
1.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아이들에게 안 보이는 세계를 보여 주는 책! 주제 1 : “생명을 먹지 않는 생명은 무엇일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푸짐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맑고 천진한 어린이다. 씨름 선수로 뽑힐 만큼 덩치는 크지만 여자 친구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수줍음도 많이 타는 섬세한 아이이다. 푸짐이는 어느 날 숙제를 하기 위해 아버지의 직장인 도축장으로 견학 갔다가 끔직한 광경을 보게 된다. 소와 돼지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거나 매달려 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푸짐이는 거식증에 걸리게 된다. 모든 음식을 보면 구역질을 하는 푸짐이를 보고 옥탑방 아저씨는 이상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이 세상 생명 가운데 생명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게 무얼까?” 이 질문이 바로 많은 어린이들에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첫 번째 주제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먹이사슬’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얼마나 강자인가를 깨달았습니다. ‘풀잎을 먹는 토끼를 먹는 여우를 물리치는 표범을 쫓는 사자를 총으로 꽝 잡는’ 인간의 아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 발등을 밟던 철부지 맹매기 녀석도 머잖아 코가 꿰여 소장수한테 팔려가고, 뜸베질하던 흑염소는 한약방으로 끌려가고, 동구 밖까지 쫓아오던 똥개는 보신탕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통쾌했냐구요? 천만에요.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개장수의 올가미에 목이 졸려 죽는 걸 보고 엉엉 울었습니다. 왜 모든 불쌍한 것들은 저보다 힘센 것들의 먹이가 될까? 슬프고도 두려웠습니다.
푸짐이는 아저씨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래’라는 요정의 힘으로 환타지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 생명을 해치지 않는 ‘말라깽이 나라’, 지금 먹지 못해도 무조건 자기보다 약한 것을 잡아 놓는 ‘욕심쟁이 나라’,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나라’를 차례로 경험한다. 영원한 나라에서 푸짐이는 마을 어른을 만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자그마한 흙덩이는 여치의 날개, 뱀의 비늘, 멧돼지의 붉은 피, 들소의 콧김, 원숭이의 한숨, 악어의 눈물, 메기의 웃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료를 섞어서 반죽한 거란다. 흙은 모든 생명의 무덤이지만 모든 생명의 젖줄이기도 하지. 둥글게 빚어 구운 건 우리가 했지만 반죽은 아니란다. 반죽은 온 생명이 했다. 온 시간에 걸쳐서 했단다.”
환타지에서 돌아온 푸짐이는 거식증에서 벗어나게 되고 아저씨는 생명이면서 생명을 먹지 않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은 누구도 저 혼자 숨쉬는 것이 없으며, 살아 있을 때는 모든 생명의 힘으로 살다가 죽을 때는 다른 생명의 숨이 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이 세상은 이루어졌으며 유지되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생명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세상의 생명들을 바라보게 해 준다. 혹 자신이 보잘 것 없다며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나 하나의 생명이 온 세상을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는 생각과 용기를 갖게 한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만큼 죽는 것도 소중하다는 다소 어려운 철학적인 메시지도 던져 준다. 가까이 두고 키우는 강아지만큼이나 햄버거의 재료가 된 돼지와 소도 소중하고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위해 생명을 버린 것들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동화의 주제이다.
주제 2 : 세상에 모든 직업은 소중하다. 생명에 대한 어려운 질문이 이 책의 중심 생각이지만 주인공 푸짐이에게 현실적으로 닥친 절실한 고민은 ‘아빠의 직업’이다.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한 번쯤은 “내 부모가 좀더 잘 살았다면…” “우리 아버지가 더 훌륭한 사람이라면…”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면…”하고 마음속으로 투정해 본 적이 있으리라. 이 책의 주인공 푸짐이 아버지는 반 아이들이 혐오하는 도축장에서 일하신다. 푸짐이는 늘 아버지 직업이 아이들에게 알려질까 걱정한다. 아버지 역시 자신의 직업을 다른 사람들이 모르길 바란다. 푸짐이의 고민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늘궁전’의 설화를 통해 풀리게 된다. ‘백정’이라는 직업을 천시하는 아이들의 생각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모든 직업은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며 특히 사람들이 천시 여기는 ‘백정’ 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도 깨진다.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오방장이 금기시 되어 있는 복숭아 나무를 먹고 벌을 받아 소가 되었다는 설화는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는 듯 구수하면서도 따뜻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하하, 이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백정들 사이에서 전해 오는 설화란다. 백정들은 소 잡는 일을 아주 신성한 일로 여겼다. 왜냐하면 소를 죽이는 것은 귀양 온 오방장을 고통스런 이 땅에서 하늘나라로 되돌려보내는 일이니까 말이다. 소를 잡는 곳도 요즘은 도축장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하늘 궁전이라고 불렀단다.”
이 밖에도 흰고무래나 촛대 이야기는 요즘 아이들이 잘 모르는 신비한 옛 이야기로 옥탑방 아저씨의 입을 통해 신비롭게 들려준다. 푸짐이 집에 세 들어 사는 옥탑방 아저씨는 스님이지만 절을 잠시 떠나 세상의 좀더 큰 이치를 깨닫기 위해 남들이 피하는 도축장에서 일한다. 아저씨와 함께 찾아간 ‘하늘궁전’이라는 마을에서 푸짐이는 과거에 아저씨의 아버지가 백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저씨 역시 푸짐이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손 내미는 어른들이 보내는 화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푸짐이는 하늘궁전을 다녀 온 뒤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을 바꾼다.
“나는 앞으로 아빠가 하시는 일을 전처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는 않겠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아빠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지 깨달았다. 아빠는 아직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아빠를 많이 미워하고 부끄러워했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나와 우리 가족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를 따뜻하게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고 아빠는 소의 맑은 눈망울을 보지 못하는 거다. 애써 외면하시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도 소의 영혼을 믿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아빠도 소의 맑은 눈망울을 똑바로 바라보고, 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될 거라고 믿는다. 얼마 전까지 나는 아빠의 손길이 내게 닿으면 끔찍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빠의 손이 안쓰럽고 조금은 자랑스럽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거친 손, 내일은 그 손을 꼭 잡아보아야겠다.”
주인공 푸짐이가 겪었던 아버지 직업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의 경험에 대해 훨씬 성숙한 답을 찾게되는 것이다.
2. 상상의 즐거움과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 주는 동양적인 환타지 동화! 아이들에게 마법의 세계는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을 불러낸다. 이 겨울 다시 ‘해리 포터’에 빠져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동화집은 생명 이야기를 담은 깊이 있는 순 우리만의 환타지 세상을 보여준다. ‘나래’에 이끌려 환타지 세계로 들어간 주인공 푸짐이의 이야기는 동네 형들 사이에 끼여 군고구마 먹으며 이불 속에서 주워 듣던 구수한 이야기이다. 흥미진진해서 군침을 자꾸 삼키던 그 시절의 이야기처럼 이 동화는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입담과 탄탄한 이야기로 읽는 재미를 더 한다. 글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노래들은 읽으며 같이 웅얼거리는 즐거움도 준다. 하나는 둘보다 적고 둘은 셋보다 적다네 셋은 넷보다 적고 넷은 다섯보다 적다네 무엇이든 많은 건 남기면 되지만 적은 것은 늘릴 수 없다네 배부르면 남길 수 있지만 배고플 땐 참을 수 없다네 부지런히 벌레를 잡아 말리세 동화<하늘궁전의 비밀>은 환타지 세계의 흥미만 충족시키는 것만 아니라 생명의 철학을 깨닫게 해 주는, 생각을 쑥쑥 키워주는 동화이다. 지구촌 한 구석에서는 아직도 기근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아니 먼 나라까지 찾지 않아도 우리나라 결식 아동은 1999년에 17만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런 사정과 달리 주변을 보면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이고 부족한 것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풍요로운 요즘의 아이들. 그러나 어찌 보면 정신적으로 가난한 우리 아이들. 충청도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반칠환 시인이 어린이로 돌아가 세상 아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이 한 편의 동화에 옹골차게 들어 있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