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9일, 나는 왜 쿠바로 가는가 비행기에서 마시는 술은 더 독하다 새벽 3시, 잠들지 않는 멕시코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서 보낸 한나절 북회귀선이 지나는 나라, 쿠바로! 여기는 하바나입니다 말레콘 위의, 노래하는 검은 오르페우스 아름다움이란 건 때론 알 수가 없다 도둑맞은 시가 박스 자전거를 타는 두 남자, 노이와 이고르 줄리엣은 그날 집에 없었다 꿈 속에 떠 있는 사랑의 섬이여 리비에라, 화려한 밤은 가고 버스 정류장, 베레모를 쓴 미녀 올드 하바나의 미로 속을 헤매다 헤밍웨이 앞에 놓인 칵테일 한 잔 가게에서는 늘 줄을 서야 한다 민박집의 호탕한 마담, 구델리아 쿠바의 여자들은 탈출을 꿈꾼다 혁명의 별은 그렇게 떨어지고 함부로 시가를 피우지 말라 하얀 양복의 신사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몸치, 살사 춤에 도전하다 ‘노인’은 아직도 그 바닷가에 있을까 비록 곤궁하나 그들에겐 문화가 있다 체 게바라의 신화가 잠든 곳 애니깽의 후손이 부른 애국가 산업 전사들과 함께 먹은 떡국 쿠바에서의 마지막 만찬
1. 화가 사석원은 누구인가 서울, 파리, 도쿄 등지에서 서른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내외의 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전국대학미전 금상,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월간 미술」 선정 한국의 인기 작가 1위, 한국일보 선정 '2000년대를 빛낼 새별 100인' 중 미술 부문에 선정된 바 있다. 1980년에 일본 배낭여행을 처음 시작한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녀왔다. 일본만 해도 25차례를 방문했으며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서남아시아, 중국, 유럽 등 거의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다. 2003년 「조선일보」에 '사석원의 대폿집 기행'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당나귀는 괜히 힘이 셉니다>란 화문집을 내기도 했다. 현재 회화와 조각을 병행하며 작업하고 있다.
2. 그는 왜 쿠바에 갔는가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감명 깊게 본 그는 당연히 그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골라 보았다. 평생 음악에 일생을 바친 노인들의 애잔한 노래와 연주도 물론 좋았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과 눈을 일순간에 사로잡은 굉장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잡지에나 나올 듯한 구식 낡은 승용차 한 대가 하바나의 방파제를 따라 달려온다. 그때 카리브해의 하얀 파도가 방파제를 훌쩍 뛰어넘어 속절없이 자동차를 덮친다. 그런데도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바닷물을 뒤집어 쓴 채 길을 따라 유유히 계속 달려간다. 아직도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인 낡은 세단과 사람이 도저히 살 것 같지 않은 남루한 건물은, 너무나 낭만적으로 보이는 기다란 방파제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던져 주었다. 그 장면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무언가도 필요치 않았다. 그 장면을 본 순간부터 난 그만 쿠바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3. 왜 사람들은 쿠바에 가길 꿈꾸는가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 해 서쪽, 북회귀선 바로 밑에 위치한 쿠바는 문화적·지리적으로 우리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먼 나라다. 직항편이 없어 캐나다 등을 경유해야 하며, 멕시코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 하는 등 비행 시간만 해도 꼬박 하루가 걸리고, 비행기 티켓 가격만도 300만 원 정도로 결코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은 곳이다. 그러나 김병종, 김영하 등 예술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쿠바는 늘 이상향으로 머물러 있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 별처럼 빛나는 위대한 게릴라, 체 게바라의 나라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가리켜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칭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까지 겸비하여 친미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혁명으로 몰아내기까지 수많은 게릴라전을 수행한 체 게바라는, 전 세계의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 있어 영원하고도 위대한 우상으로 남아 있다. 쿠바에 가면 체 게바라의 혁명의 기운과 형형한 눈빛과 위대한 전설과 뜨거운 혈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 함부로 시가를 피우지 말라!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지 못하리니! 처칠, 체 게바라, 알프레도 히치콕, 아놀드 슈왈제네거, 말라르메, 스탕달, 레닌, 조르주 상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지독하게 시가를 즐긴 시가 마니아라는 점이다. 심지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천국에 시가가 없다면 나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올드 하바나를 떠도는 은은하고도 몽롱한 시바 향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한다. 담뱃잎을 재배하는 데 있어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최상급의 시가가 생산되는 쿠바. 쿠바에 가면 질 좋은 시가를 마음껏 피울 수 있다.
** 음악이 있고, 춤이 있어 그들은 가난해도 울지 않는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인생과 사랑을 노래하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전설을 이어받아,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공연이 매일 밤 쿠바 최고의 호텔에서 공연된다. 그리고 술집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고개만 돌리면 그 어디에서나 꼬마부터 노인들까지 사람들은 노래를 하고 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댈 만큼 열정적이며 춤과 음악을 사랑한다. 쿠바 음악은 맘보, 차차차, 살사, 룸바 등의 원형으로 지금도 전 세계의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리듬에 맞춰 뇌쇄적인 살사를 추고 있다. 음악의 천국, 춤의 왕국 쿠바에 가면 천하의 음치, 몸치라도 원초적인 본능에 몸을 떨 수밖에 없다.
** 하바나 럼주를 마시고, 전설적인 칵테일 다이퀴리에 취하고 쿠바는 칵테일의 천국이다. 해적들이 즐겨 마셨다는 정열적인 술인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 '하바나 클럽'을 섞어 쿠바의 바텐더들이 제조할 수 있는 칵테일만도 무려 100여 가지나 된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던 '엘 플로리디타'라는 바를 찾으면 럼주와 쿠베이라는 앵두술, 그리고 레몬 주스, 거기다 잘게 부순 얼음을 넣고 흔들어 '다이퀴리'를 만들어 준다. 한 잔만 마셔도 취기가 오르고 약간 몽롱해진다는 이 칵테일을, 헤밍웨이는 앉은 자리에서 무려 열다섯 잔이나 마실 만큼 즐겼다고 한다. 쿠바에 가면 이 환상적인 카리브 해의 정열에 마음껏 취할 수 있다.
**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 유산, 과거 속으로의 시간 여행! 100년도 더 된 우아한 호텔과 건물이 여전히 손님을 맞고,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폐허에서도 빨래들이 나부낀다. 1950년대 잡지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올드 카와 마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고, 길 가에는 개들이 누워 낮잠을 자며, 도심에서도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 1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20리 길이 의 방파제에는 온갖 사람들이 나와 앉아 짙은 바다와 커다란 파도를 만끽한다. 군살 없이 쭉쭉 뻗은 아름다운 근육질의 남자와 세련된 옷차림의 여자들이 눈을 사로잡고, 순박한 사람들이 친절한 미소를 보내는 그 곳, 쿠바는 그야말로 한번 빠져들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황홀한 천국이다.
4. 쿠바에서 보낸 3주, 어떻게 표현했는가? 모든 예술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가. 화가 사석원은 한 칸 한 칸 꼼꼼한 글씨로 메운 600매가 넘는 원고지와, 보기만 해도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멋진 슬라이드 필름 300여 컷과 쿠바에 다녀온 후의 강한 영감을 강렬하고도 원색적인 컬러로 표현한 그림 20여 장으로 3주 간의 황홀한 쿠바 여행을 정리했다. 이 한 권의 아름답고도 시원한 책으로 독자들의 여행과 예술과 미지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 충족될 것이며, 마치 직접 가보고 온 듯한 강렬한 대리 체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의 에스프리가 이야기처럼 연결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시간의 흐름에 맞춘 꼼꼼한 기록이므로 먼 나라 쿠바로 가는 길을 소개하는 멋진 실용서의 역할로도 충분하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