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이 전해지지 않으면 간혹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시린 바람이 불어올 즈음 소외된 구석에서 상처 곪는 소리가 흘러들 즈음 세상이 변할 거라고 내 얼굴 좀 봐달라고 아우성하는 사람들 뒤로 묵묵히 헌신하는 행복한 얼굴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높일 줄 아는 귀한 사람
이즈음 그리운 그의 목소리는 참으로 한결같다. 순백처럼 지고한 그의 회망. 하루에 한 번씩만 남을 배려한다면, 다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걱정과 오해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전체의 행복에 익숙한 사람 주일마다 교회를 찾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단 한 번도 성경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혹은 법당을 찾는 불교신자라 할지라도…….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무척 친숙하다. 그가 민중사역을 실천하는 목회자라는 신분임에도 이토록 세상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까닭은, 성경의 교리를 배우기 이전에 그로부터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1년 청계천 판자촌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세계 곳곳에 두레마을을 세우기까지, 근 30여 년 동안 공동체 살림의 정신적 풍요로움과 행복을 전파시켜왔던 희망의 메신저 김진홍 목사. 그는 결코 말로써 자신을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지식으로 스스로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는 행동하고 섬김으로써 상대를 높이고, 상대를 높임으로써 자신을 깊이 채운다. 전체의 행복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그 후로 3년 김진홍 목사의 자전소설3부작 『황무지가 장미꽃같이』가 출간된 지 3년이 지났다. 그의 좌절과 고난의 시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던 자전적 소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시린 눈물과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세간에 화제로 떠올랐다. 그 후로도 그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좀더 가깝게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중이다. 지리산 자락에 생태마을을 조성하고 죽어가는 자연을 살리는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도,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를 통해 이러저러한 세상살이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올리는 노력도 모두 그 가운데 하나일 터이다. 그런 그가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시원한 메시지를 던졌다. 『사랑하며 함께 걷는 길』이란 소박한 제목으로 묶인 한 권의 작은 책에서 그는 우리네 살림 안팎을 마치 싸리빗자루로 쓸어내듯 말끔히 정리해놓는다.
가정과 교육에서 공동체와 나라살림까지 그가 바라보기에 2002년과 1997년은 참 공통점이 많은 해이다. 무엇엔가 홀린 듯 분주하고 요란한 것도 그렇고,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참 많은 행사를 치러내는 것도 그렇다. 5년 전 개혁과 변화의 기치 아래 세계화를 주도하자는 메아리를 울리기 시작했는데, 5년 후인 지금도 여전히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는 것처럼 어설프기만 하지 않은가.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한탄이 이어지고 지도자의 가족들 이름이 볼썽사납게 오르내리며 한숨을 자아낸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으며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아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7차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뿐만이 아니다. 세계인의 중심으로 섰던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까지……. 언뜻 보면 무언가 많이 변한 것도 같은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회의 부분 부분이 삐거덕거리며 무너지고 허옇게 곪아간다.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김진홍 목사. 그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5년이란 세월 동안 무상하리만큼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지금의 현실이 참 막막하다. 12월 선거를 앞두고 여러모로 분주한 가운데 그가 5년 전 이맘때를 떠올린 것은 오지랖 넓어 나라살림 걱정으로 하루도 쉴 날이 없는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다시 5년 전부터 써 내렸던 글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글들의 '유효기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한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을 모으고 다듬었다. 책으로 묶이기 전, 글을 읽은 사람들은 '시원하고 통쾌하다'라는 평을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세상살이에 대해 '할 말 안 할 말' 거르지 않고 서민들이 말하고 싶은 그대로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소외되어 있는 이웃의 모습을 수면 위로 떠올리고 싶었고, 말만 나왔다 하면 싸움으로 번지곤 하는 국가행정과 정치에 대한 견해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우회적으로 토로하듯 크게는 세계관과 국가관, 작게는 진솔한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궁극적 목적지는 그러나 결국, '사랑하며 함께 걷는 길'로 응축되고 집약된다. 외피와 내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급기야는 같은 지점에서 만나고 마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변화와 성장을 즐겨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세상살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의 시선은 하지만 거시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미시와 거시가 궁극적으로 같은 곳을 지향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은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이다. 개개인의 삶은 소우주이면서도 타인의 세계와 하나의 사슬로 묶여져 있다. 그래서 '겨레'와 '평화'라는 캠페인처럼 강한 구호의 형태를 띠지만 그 속에는 '작은 영수증 한 장'을 소중히 다루려는 삶의 면면이 숨겨져 있다. 전체 7부로 나누어져 있는 구성 또한 미시적인 차원에서 거시적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주제는 커지지만 담긴 내용이 점점 소외된 민중 속으로 내려오는 까닭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가정과 교육, 공동체, 지도자 찾기, 시스템의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으며 그는 자신의 삶의 얘기 또한 잊지 않고 들려준다. 가정과 교육에 대한 그의 유쾌한 습관 하나만 들어보자. 홀로 두 형제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지독한 일제 치하에서도 일본인들로부터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이 '책 읽는 습관'이었는데 어머니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 손에 쥐고라도 있어라' 하셨지요. 덕분에 지금도 저는 공항에서 책을 읽다가 비행기를 놓치곤 합니다. 그래도 고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서 소탈하게 웃음 짓는 그의 모습은 힘겹고 시린 세월을 견뎌온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평화롭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인내와 희생을 했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을 스스로 즐겼을 뿐이지요. 변화란 행동과 생각, 문화와 가치가 다 함께 어우러지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즐길 수만 있다면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글 속으로 들어가 보면 참 세상이 닮은꼴이다.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와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원리는 단 한 가지이다. 한 번씩만 남을 배려하라는 것! 그렇게 한다면 세상의 모든 걱정과 오해가 사라져버릴 테니까 말이다. 이 글을 묶으며 그는 작은 소망을 내비친다(어찌 그만의 소망에 그칠까만은). 올해의 고개를 넘어가면 너른 지평을 만나리라. 그곳에 씨를 뿌릴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이 글들의 유효기간이 조금 더 짧아지기를…….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