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이기를 거부한 이야기꾼 _ 이광수 오만한 예술가의 초상 _ 김동인 청빈과 불굴의 호인 _ 현진건 요절한 로맨티스트 _ 나도향 가난한 소설가의 가난 이야기 _ 최서해 자기 고백에서 시대 해부로 _ 염상섭 바보 같은 아저씨가 사는 법 _ 채만식 인생, 그 서글픈 미학 _ 김유정 소통 부재의 세계 _ 이상 Eroticism, Lyricism, Exoticism _ 이효석 죽음과 삶 사이에 선 인간 _ 김동리 소설쓰는 시인 _ 황순원
이 책은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12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보고서이다. 작가의 저작이나 평전 등 무수한 기록들을 창조적 개연성을 발휘하여 인간으로 서의 작가의 생을 읽어내었다.
문학사와 개인사의 연결고리를 잇다 소설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라면,그 사실이란 당대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속에 작가 자신의 내면과 생활이 투영되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작품을 연구할 때 그 창작 시기와 역사적 배경, 작가의 개인사까지 고려해야 마땅한데, 지금까지 그 창작 과정과는 별개로 독립된 하나의 실체로 치부해온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근대 문학 작품들은 당대의 역사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창작 시기를 무시하는 것은 곧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셈이다. 이 책은 이 점에 착안하여 개인사와 문학사를 연결하는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김유정이 살아 숨쉬는 판소리 문체를 구사한 데에는 판소리 명창으로 이미 화류계의 유명인이었던 박녹주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이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 이상이 분열적 자아가 드러난 작품을 쓴데에는 두명의 아버지를 가진 복잡한 가족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인 그들을 만나다 이를 위해 각 장별로 자전적인 글이 한 편씩 수록되었다. 문학사와 개인사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장치는 없을 것이다. 이 글들은 대개 특별히 예술적인 가치가 있거나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닌, 작가의 솔직한 고민이 스며 있는 글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어린 딸이 가난 때문에 고통 받은 가슴 아픈 사연도 있고(최서해),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글도 있고(김유정), 만주로 애정 도피를 떠난 여동생의 앞날을 축복하는 편지글도 있고(이상), 노모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친 글도 있다(채만식), 이로써 작가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과 생각들을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생생한 증언을 돕는 풍부한 자료들 작가의 생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도록 작가별로 연보를 실었다. 숫자오 사건만 나열된 여느 연보와 달리 그 연대에 해당하는 사건이나 작품 사진들을 함께 보여주는 입체적인 구성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하였다. 또한 본문에 실린 100여 컷의 사진들은 작품으로만 접해왔던 작가들의 개인사를 엿볼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다. 각장의 말미에 정리해놓은 참고문헌들은 작가에 대해 주변의 문인들이 남긴 글과 나중에 씌어진 몇 편의 저작물들, 작가가 자신에 대해 쓴 글과 당대의 기록들로서, 작가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전기적 사실과 작품의 연관성을 세밀하게 따져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야기꾼이기를 거부한 이야기꾼, 이광수 최초로 근대 소설의 장을 연 '무정'의 작가 이광수.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과 친일 작가 가야마 미쓰로로 양분된다. 비상한 머리와 재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문학을 단지 자신의 친일 정치사상을 전달하고, 교육, 계몽하는 수단으로 여겼던 사실이, 대문사에서 친일 분자로 변모하여 마친 생애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한 예술가의 초상, 김동인 우리 문학사상 '가장 오만한 작가'로 불리며 '창조', '영대'의 발간으로 근대 문단에 힘을 실어주고,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기초를 확립한 김동인, 이광수와 주요한과 같은 문단의 대선배들에 대한 질투와 선망으로 자신을 더욱 문학적으로 단련해나갔던 그 이지만, 방탕으로 인한 빈궁, 빈궁으로 인한 창작, 그리고 병마는 김동인의 육체와 정신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청빈과 불굴의 호인, 현진건 조선의 젊은이의 가정을 문예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첫 문인, 현진건. 대표작 '빈처'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평생 가난 속에 학문도 포기하고 소신대로 살 수 없었지만, '동양적 가족애'를 잊지 않고, 자신의 가난과 불행뿐 아니라 식민지 전체의 불행을 토로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끝까지 반일 사상을 고수하며 빈곤한 삶을 산 그의 인생은 불굴의 삶 그 자체이다. 요절한 로맨티스트, 나도향 '호남자'로 불릴 만큼 활달하고 후한 성격에 주량과 노래 솜씨는 아무도 따라올 자가 없었던 나도향, 문학에 대한 충만한 열정으로 문단에 뛰어들어 성숙한 사실주의 문학의 지평을 개척하였으나, 생계유지를 위해 글을 쓰다 폐병에 걸려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여 불우한 한국 근대 작가의 생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난한 소설가의 가난 이야기, 최서해 보고 문학, 체험 문학의 새 장을 연 '조선의 고리키'최서해.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어린 시적부터 겪어온 뼈저린 가난을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울분을 표출하였다. 비록 작가 생활을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가 고백하였듯, 등이 휘도록 무거운 짐을 지거나 발바닥이 닳도록 먼 길을 걷거나 독한 술에 취하거나 뜨거운 사랑의 품에 안기고 싶을 만큼 흘러넘치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난을 넘어서게 한 힘이었다. 자기 고백에서 시대 해부로, 염상섭 작가와 기자 사이를 횡보하였지만, 사회 현실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해부하는 작품을 발표했던 염상섭, 후에 '너무나 제 나라의 것을 경시, 멸시하여왔고, 더구나 고전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문학 수업에 큰 결함이었고, 뒤에 오는 사람이 스스로 경계하여야 할 일' 이라고 한 고백은 오늘날에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바보 같은 아저씨가 사는 법, 채만식 끼니를 잇지 못하는 중에도 늘 감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단정하게 입고 다녀서 '불란서 백작'으로 불린 채만식. 가난과 고독으로 얼룩진 불행한 삶, 불의와결코 타협하지 못했던 성격과 일제하의 암울한 현실, 가다롭고 결벽증적인 기질 등에서 비관주의가 짙게 깔린 '치숙'과 같은 풍자적인 작품이 탄생하였다. 인생, 그 서글픈 미학, 김유정 가난하고 무지한 우리네 인생을 해학으로 푼 김유정. 유복한 유년기를 거쳐 박녹주, 박봉자 등을 향한 광기 어린 짝사랑의 청년기를 지나, 농촌계몽 운동에까지 뛰어든 인생이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열을 남김없이 ?아 부은 대상은 바로소설 창작이었다. 거러나 죽기 전 4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남긴 30여 편의 작품이 생전에 무명이었던 김유정을 사후에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인생의 아이러니이다. 소통 부재의 세계, 이상 우리 문학사의 영원한 수수께끼, 이상. 그의 작품에서 종종 드러나는 자기 분열성은 큰 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두 명의 아버지를 두게 된 성장기에서 그 모체를 찾을 수 있다. 머리도 뛰어나고 그림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이지만, 기행을 일삼기로 유명했다. 난해한 문장과 숫자와 기호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썼는데, 이는 어쩌면 '불구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지식인의 정신 세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은유가 아닐까. Eroticism, Lyricism, Exoticism, 이효석 모두가 메주내 나는 문학을 하는 속에서더 버터내 나는 문학을 고수했던 철저한 심미주의자 이효석. 어렸을 때부터 체호프와 같이사실적이면서 낭만적인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기에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서정성 짙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다. 비록 당대 현실을 외면한 작품들에는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서정 소설이라는 문학의 한범주를 연 공로자이다. 죽음과 삶 사이에 선 인간, 김동리 문단 정치가, 한국 문단의 대부, 김동리. 어린 시절부터 무속과 기독교의 세계를 접하면서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삶의 문제는 그의 작품 속에서 질긴 문학적 화두가 되었다. 해방 후 한국의 민족적 문학적 주체성을 주장하는 활동을 벌이고 온갖 단체의 지도자로 일하며 우리 문단의 핵심에 자리하였기에, 보수주의적인 성향은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대 문학의 지평을 열고 후진 양성에 힘쓴 사실이 후대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소설쓰는 시인, 황순원 소설이 예술이라는 것을 끝까지 보여주는 작가가 되겠노라던 황순원. 그의 작품을 '소나기' 한 편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등단 후 장장 62년 동안 200여 편의 시, 소설을 창작했기 때문이다. 평생 감투 하나 쓰지 않고 오로지 창작에 전념한 그의 고집스러움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