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에 의한 성노예들의 한 맺힌 이야기 광복 63주년을 맞아 도서출판 동쪽나라에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던 종군위안부들의 이야기를[패랭이꽃]이란 소설로 엮어냈다. 부제는 ‘짓밟힌 조선 여인의 넋’. 일제의 강압으로 여자로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던 그녀들. 그러나 그녀들은 지금도 고개를 똑바로 세우지 못한 채, 부로와 형제로부터,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위안부’라는 말은 그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는 용어가 아니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감추려고 일본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낸 말로 일본군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그대로 묻어 있다. 이러한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 최근 공식화된 용어는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노예’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여전히 꺼리고 있다. 피해를 당했던 여성 본인들도 이 용어를 꺼려한다. 그만큼 그들이 겪었던 일들이 끔찍하고 수치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스스로 수치스러워 하는 것과, 그 곁에 있는 우리가 수치스러워 하는 것은 분명 다르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패랭이꽃]은 단순히 그녀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소설이 아니다. 60여 년 동안 그녀들을 방치해 왔던 우리들의 치부를 정면으로 헤집고 들어온다. 그래서[패랭이꽃]은 종군위안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들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철저한 자기반성의 촉구 <패랭이꽃]은 가해자인 일본의 악행을 고발하고 민족적 공분을 일으키기 위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못남을 드러내고 그 것을 깨고 일어서지 못하는 못난 아버지와 오빠들을 추궁하여 궁지로 몰아세운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서 조선인, 조선 남성들의 무기력함을 비웃곤 한다.
남녀가 반반씩 탄 세 번째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경찰서 앞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을 부르는 남은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경찰이 쳐놓은 금줄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이미 떠날 사람들은 떠난 것이다. 옥아는 다시 생각을 했다. 미리 저 선을 무너뜨리지. 일본 경찰들이 빙긋 웃는 이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며 니시하라가 옥아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여기 왔나?” “조선 사내들이 못나서.” 옥아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찌 보면 자기비하 같은 이러한 표현들은 사실 읽는 이로 하여금 조금은 억울한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약한 여성들이 겪게 되는 참혹한 상황들이 전개되면서 우리는 잠시 억울해 했던 자신을 다시 반성할 수밖에 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지못미’라는 말이 입안에 머릿속에 맴도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
지독한 절망 속에서 꽃피우는 희망 그런데, 왜 제목이 ‘패랭이꽃’일까? 이 소설에서 나오는 우리 조선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못나고 무기력하다. 그러한 그들을 감싸고 있는 상황은 또 그들을 더 지독한 절망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패랭이꽃]은 끈질기게 희망을 놓지 않는다. 치유할 수 없는 멍에를 60년이 넘도록 내려놓지 못하신 생존 할머니들처럼, 소설은 얼굴이 쭈굴쭈굴하고 손이 곱은 모습이면서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처연함이 묻어난다. 아마 그러한 모습이 우리 민초를 닮은 패랭이꽃 같은지도 모른다. 패랭이꽃은 꽃 모양이 하층 백성들이 머리에 썼던 ‘패랭이’를 거꾸로 놓은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패랭이는 양반들이 썼던 삿갓과는 그 격이 다르다. 패랭이꽃은 ‘패랭이에 숟가락 꽂고 산다’고 하여 세간이 아주 보잘것없음을 나타내는 속담에도 들어갈 만큼 민초들을 상징한다. 낮은 곳에만 피었다가, 역시 낮게 지고 만다. 꽃잎은 연자주색. 그 한 많은 아픔을 지니고 계신 이, 가신 이, 모든 어르신들의 꽃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