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관계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여주 은하수와 은 회장의 차를 운전하는 아버지를 둔 남주 수원. 어머니를 여인 수원은 아버지와 함께 은 회장 댁에 딸려있는 별채에서 지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원과 하수는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음에 담아 두게 된다. 아직은 학업에 전념해야 할 나이기에 서로에 대한 마음을 겉으로 들어내지 않고 지내는 두 사람. 오랫동안 꽁꽁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감정을 하수는 수능이 끝나고 그의 생일날 고백하기로 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 하수는 수원과 만나기로 한 식당에 먼저 나와 기다렸다. 수원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서... 그러나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날이 수원과 만나는 마지막 날이란 사실을...
“열아홉 번째 생일 축하해, 수원아.” 소녀가 점점 잦아드는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원했던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소년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고, 밤새워 만든 목도리를 건네고, 편지와 함께 좋아한다는 마음을 고백할 예정이었다. “은하수.” 소년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숙인 고개를 들려 했다. “나 보지 말고, 그대로 고개 숙인 채 내 말 들어.” 무릎 위에 얹어진 소녀의 손이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다신 나, 아는 체하지 마.”
이후 두 사람은 나름 각자의 길을 걷는다. 대학을 졸업한 하수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작가의 길을 건는다. 경영 수업을 배워 아버지 사업을 잇기를 바라던 그녀의 모친 성희의 바람을 뒤로하고. 이런저런 이우로 모녀 관계는 소원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나름 방송가에서 자신의 입지를 궂히고 있는 하수였다. 몸이 아픈 형을 위해 의학도를 꿈꿨던 수원은 형편상 중도에 포기하고 우연한 기회를 통해 연예계로 진출하게 된다.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은 하수의 작품을 통해서다. 망막색소변성증을 알고 있는 주인공으로 수원이 캐스팅 된 것. 사실 작품은 수원을 생각하면서 쓴 것이기에 어쩌면 그가 발탁된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고 헤어져야 했던 하수. 지난 시간 나름 많은 의문과 궁금증이 서서히 그 진실을 드러내게 되고.
“수원 씨가 앓고 있는 건 단순한 야맹증이 아니에요. 망막색소변성증이라고 하는 건데 들어봤어요?” 의사의 어조가 상대를 깔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수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쉽게 설명해줄게요. 인간은 망막을 통해 빛이나 색깔, 그리고 형태 등을 인식해서 뇌로 전달해요. 그때 그 빛은 망막에서 세포를 통해 뇌로 도달하게 되는데 수원 씨가 앓고 있는 망막색소변성증은 그 세포에 문제가 생긴 질환이에요. 그 세포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빛을 느낄 수 없고, 색깔도 인지 할 수 없고,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거예요.” “…….” “망막색소변성증은 학생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처럼 처음엔 10세 전후에 야맹증으로 시작을 해요. 그러다가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중심 시력이 흐려지면서 실명에 이르게 되는 진행성 질환이지요. 그러니까 내 손을 봐요.” 늙은 의사가 두 손을 펼쳐들고 주먹을 느슨하게 쥐었다. 동그란 모양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이만큼 보이던 시야가…….” 의사가 엄지와 손가락 사이에 뻥 뚫린 공간을 가리켰다. 그러다 점점 주먹을 쥐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좁아지다…….”
그랬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과거 수원이 하수에게 이별을 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리없는 하수.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원망을 갖고 지냈던 하수은 과거 몰랐던 사실과 현재 수원이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 충격에 휩싸인다. 성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만 가고... 은회장은 뒤늦게 남철이 당시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해준다. 많은 시련이 두 사람에게 닥치지만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