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할머니 하늘을 날다>에서는 꿈꾸는 것이 어색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욕심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우리 노인들의 아픈 속내와 힘든 현실이 오롯이 담겨 있다. 80대 할머니와 10대 아이들이 감행하는 아슬아슬한 양로원 탈출과정과 할머니의 소중한 추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나이 듦의 의미와 노인의 현실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또한 ‘아직’ 늙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퍼붓는 차가운 유머와 ‘이미’ 늙어버린 이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어, 감각적인 재미와 함께 가슴 찡한 울림을 전해 준다. 마지막까지 할머니를 돌보는 아이들의 순수한 우정과 인생의 마지막만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할머니의 끈질긴 열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다.
우리가 할머니를 납치했습니다. 우리를 소개하겠다. 나는 열네 살이고 클라라는 열세 살, 막내 코라는 여덟 살이다. 우리가 납치한, 아니 납치했다고 신문과 방송에 대서특필됐던 할머니는 우리 증조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올해 여든아홉 살로, 한때는 정정하셨다. 할머니는 무척 특이한 할머니이다. 여기서 ‘특이하다’는 것은 다른 할머니들처럼 파티장에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거나 자식들이 시키는 것들을 고분고분 따라하거나 집안은 소박하고 정갈하게 해 놓고 절대 크림치즈는 먹지 않는 것의 ‘정반대’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부모님은 할머니라면 무조건 머리를 싸맨다. 한마디로 ‘코드’가 맞지 않아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웬걸, 할머니와 우리는 코드가 아주 척척 맞는다. 어느 날, 할머니가 실수로 팔을 삐었다. 부모님의 재빠른 ‘배려’로, 할머니에게는 간병인이 붙여졌고, 그 후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간병인은 할머니의 생각은 ‘건강에 안 좋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 방식대로 할머니를 길들인다. 할머니는 나날이 기력이 약해지셨고 나중에는 우리를 못 알아보기까지 하셨다. 할머니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만’ 있었다. 우리가 할머니에게 드린 요구르트 때문에 탈이 난 할머니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됐고, 그 후 할머니는 전문 양로원으로 옮겨진다. 간병인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할머니가 간 양로원에는 더욱 고약한 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침을 흘리고, 휠체어 없이는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그렇게 친했던 우리까지 알아보지 못한 채 원장이 강제로 퍼붓는 약을 삼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 우리는 경악했다. 건강은 물론 할머니 자신조차 완전히 ‘망가지고’ 만 것이다. 부모님은 할머니의 변한 모습에 애써 눈을 감고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느라 바쁘다. 그런 부모님의 생각, 우린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단을 내렸다. 할머니를 양로원에서 탈출시키기로. 우리의 목적지는 할머니의 신혼여행지였던 이탈리아 마조레 호수이다. 이미 할머니의 유괴범으로 ‘수배’된 상태였지만 앞뒤 가릴 것 없다. 우선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먼저니까. 우여곡절 끝에 마조레 호수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에서 불꽃놀이를 즐긴다. 밤하늘에 보석 같은 불꽃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사그라진 불꽃들을 기억하면서, 할머니는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아침, 할머니는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리고 잠시 마법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마법 휠체어를 타고 햇살 속으로 그렇게, 할머니는 날아가 버린 것이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상처투성이 마음을 읽는다. 노.인.문.제. 10대 아이들에게는 이름도 어려운, 사회 과목 시험에나 나올 용어로 들릴 뿐이다. ‘보지도 못한 노인들의 문제를 왜 고민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해?’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아이들의 철없음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아이들에게 노인문제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의 현실에 대해서, 어른들 대신 이야기해 주고 있는 이 책은 가치가 있다. 한 집에서 함께 살 수도 있지만, 수만 가지 이유에 부딪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아이들은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들의 마음고생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노인문제는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사회문제가 아니라, 조금 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배려하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면 해결되는 ‘가족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이 듦은 삶을 완성하는 아름다운 과정 할머니는 영혼에 대해 물어보는 코라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빛이 나와 하늘로 올라가. 그 대신 몸은 흙이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겠지. 영혼은 빛이 되어 빛으로 돌아가고. 모든 작은 빛은 큰 빛 속으로 흡수되겠지. 그 큰 빛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야.”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여러 단면을 경험한 후 맞게 되는 인간의 노년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삶의 가치를 더욱 아름답게 완성하는 ‘빛나는’ 과정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은 삶의 전체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어떻게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 나갈 것인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할머니와 아이들의 탈출행각(?)을 보다 보면, 무척 이기적이고 편협한 어른들과 마주하게 된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될 것을, 꼭 간섭하고 끼어들어서 ‘탈’을 내고야 마는 어fms들의 무책임이 아이와 노인들을 사회의 약자로 전락시키고 그들에게서 의지를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묻고 있다. 한때 아이였고, 가까운 미래에는 노인이 될 어른들이 저지르는 이야기 속 상황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도 흡사해, 씁쓸함을 남긴다. ‘어떤 어른으로 자라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팽배한 10대 아이들에게 이 책은 부끄러운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바람직한 ‘어른 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즐거움 할머니와 손자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과는 멀어 보였던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며, 할머니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던 존재감을 회복한다. 여행길에서 부닥치는 아슬아슬한 위험을 힘을 합쳐 이겨내면서, 서로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모습 역시 로드무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10대 아이들이 80대 할머니를 양로원에서 탈출시킨다는 극적인 설정과 치밀한 작전 아래,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건들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며 뚜렷한 개성이 돋보이는 인물들의 재치와 마음 씀씀이는 이 책의 재미와 무게감을 동시에 배가시키는 힘이다. 여러 영화적 요소와 긴박감 넘치는 구성은 300여 쪽의 분량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며, 책보다는 영상물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시각적인 상상력을 선사함으로써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 책에 빨려들게 한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