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난민자격으로 탈북자 6명이 미국으로 망명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다시 탈북자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탈북자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등지를 떠돌고 있으며, 이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서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내 북한 난민의 존재와 탈북자의 증언을 통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언론에 알려진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 등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와 한국 국민의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매우 부족한 편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으로 북한과 중국에서 구호활동을 벌인 마린 뷔소니에르와 소피 들로네가 쓴 이 책은 바로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글이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한 이유는 단순히 경제지원과 식량지원만으로 북한에 대해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진 국제사회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은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를 적극 개선하는 일임을 경각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햇볕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남한은 곧바로 통일이 될 것처럼 외교적 승리 무드에 도취되어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포옹과 악수가 한반도의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포장되었고,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과 경제협정으로 ‘햇볕정책’이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북한 내부의 사정은 달랐다. 남한에서와는 달리 2000년 6월의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은 북한 지도자들과 인민들에게 철천지원수가 제 발로 찾아온 것으로 6.15남북공동선언은 자본주의 세력에 저항한 북한체제의 승리라고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더 적극성을 띄며 국제사회와 남한이 보내주는 지원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피폐한 독재국가 북한의 상황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악몽이 되었고, 권력은 굶주린 주민에게 어떠한 생존의 가능성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특히,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이 정권을 잡으면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과 고통은 극에 달했다.
저자 중 한 명인 마린 뷔소니에르는 그 당시 북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북한에 대홍수가 있었던 1995년, 북한 당국의 원조 요청으로, 처음 북한에서 의료지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진료상담의 제한을 받아 북한 주민들을 제대로 진료할 수는 없었습니다. 1차 진료를 마친 후 환자를 다시 만나 상태가 악화됐는지 호전됐는지 알아보는 게 아주 어려웠거든요. 또 북한 당국에서 지정한 통역관들을 통해서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안내자가 인도하는 곳으로만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의료적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네요. 구호활동에 대한 평가를 할 길이 없기 때문이죠. 이것이 국경없는 의사회가 북한에서 철수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초부터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은 국경을 넘어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으로 생존할 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중국으로 도주했던 그들에게 불안과 폭력, 외로움은 일상이 되었고, 공안에게 체포되어 범법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 결과 그들은 목숨을 걸고 다시 자유세계로의 도주를 시도한다. 그러나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남한에서 그들은 여전히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열다섯 살의 나이로 중국에 팔려와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김태금, 굶주림에 지쳐 꽃제비가 된 박복열, 당 간부의 아내였으나 기근과 질병으로 조국을 등진 고신경의 이야기는 바로 북한에서 탈출한 수십만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마린 뷔소니에르와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담은 소피 들로네는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 등은 탈북자의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합니다. 북한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인권탄압의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현재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은거해 있는 중국 당국과 건설적인 대화에 적극 임해야 합니다. 즉 탈북자 문제는 관련국들의 확고한 정치적 의지가 표명될 경우에만 해결될 수 있으며, 탈북자들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인도적 지원은 불가능합니다”라며 한국에서 이 책을 출간하는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대하여 국경없는 의사회(MSF, M?decins Sans Fronti?res)는 세계최대의 인도주의 국제의료구호조직으로 1971년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1968년 나이지리아 내전에 파견되어 기아로 숨져가는 현지인들의 참상을 목격한 프랑스 의사들과 1970년 방글라데시의 대홍수에 자원봉사로 구호활동에 참여했던 의사들이 뜻을 합쳐 만들었다. 북한에는 1995년에 들어가 구호활동을 펼쳤으나, 북한 당국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자 1998년 철수했다. 1996년에 제3회 서울평화상을, 199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MSF는 세계 45개국에서 모인 3천 여 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미국, 독일, 일본,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 모두 20개국에 지부가 있다. 2002년 2월부터 서울 이태원동에 한국지부 사무실을 열고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사회복지관, 탈북자 후원단체, 종교기관 등과 함께 의료지원활동을 벌였으며, 올해 4월 10일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관심을 높이려는 당초의 활동목표가 달성됐다’는 판단 아래 서울에서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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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