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지키는 집 모두 엄마 때문이야 세 가지로 부르는 할머니 병 엄마의 반란 그만두면 좋겠어 딱 들어맞은 계시 짬미의 딸, 엄마 세 개의 얼굴이 그려진 자화상 아침에 꿈 얘기를 들은 날 여자라서 안 되는 일 가출 기분이 드는 나들이 아빠한테 필요한 딸 근사한 회으, 근사한 시합 성도 필요 없는 여자 진짜 마흔 번째 생일
축구를 잘하지만 여자라서 시합에 나갈 수 없게 된 6학년 가영이, 마흔 살에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집에 두고 다시 붓을 잡은 엄마, 할머니가 아픈 건 엄마 탓이라고 생각하는 아빠, 그리고 여자는 축구를 할 수 없는지를 두고 회의를 시작한 가영이네 반 아이들. 마흔에 자기를 찾아 나선 엄마를 보면서 ‘나,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열세 살 가영이의 이야기다.
우리 집은 둘째인 내가 지킨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두고 그림을 그리러 다닌다. 자기밖에 모르는 중학교 3학년인 언니는 이런 상황에서도 치맛단을 꿰매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회사일로 바쁜 아빠는 짜증만 늘었다. 아빠는 엄마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할머니가 아프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그림을 그리러 다닌다. 하필이면 이렇게 뒤숭숭할 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아프고 묵직한 느낌……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 반 남자 애들이 반 대항 축구 시합에서 나를 빼기로 결정했단다. 내가 여자라서 같이 할 수 없다는 거다. 나는 남자 애들보다 골도 잘 넣는데, 여자니까 빠지라고? 말다툼 끝에 한방을 날렸다. 선생님은 화해하라고 하지만 나는 할 수가 없다. 내가 왜 빠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데 어떻게 화해를 하지? 혹시 엄마도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몰라서 아빠와 화해하지 않는 걸까? 다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나는 열세 살인 여자고 엄마는 마흔 살인 여자다. 나는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어린이 문학 어린이 문학의 주제는 왕따 등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이 책은 열세 살 가영이, 마흔 살 엄마, 그리고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린이 문학에서는 드물게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열세 살 가영이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두고 그림을 그리러 다니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축구를 못하게 되고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면서 어렴풋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엄마의 고민과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엄마는 흔히 말하는 ‘아이들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참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의 희생으로 행복할 가정이라면 어차피 그 가정은 행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은 깨어지지만 아이들은 불행해 하거나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가영이는 체념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가영이네 반 아이들은 학급 회의를 통해 여자는 왜 축구를 할 수 없는지 이야기한다. 싸우지 않고, 피하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결론은 여자 반 남자 반으로 구성된 축구팀을 만드는 것. ‘근사한 회의, 근사한 시합’(174쪽)에 아이들의 기발하고 진지한 회의 과정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개성이 살아 있는 ‘진짜 아이들’ 웬만한 남자 아이들보다 축구를 잘하고, 아무리 덩치 큰 애랑 싸워도 ‘깡’으로 이기는 가영이. 남자인데도 섬세하고 속이 깊어 가영이가 어려울 때 옆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 주는 든든한 주환이. 집안 분위기가 어떻든 내 일이 가장 중요하고, 엄마 아빠가 따로 사는 것보다 다이어트 때문에 에어로빅을 하러 다니는 게 더 창피한 중학교 3학년 가희. 이 책에는 현실에서 책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 생생한 ‘진짜 아이들’이 있다. 친근하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는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며, 함께 웃고 실망하고 분노하면서 이들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줄거리 밑으로 흐르는 생각할 거리 열세 살 가영이를 통해 경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책은 재미있는 줄거리 밑으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깔아놓았다. 읽을 땐 재미있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여자는 왜 축구를 하면 안 되지?’ ‘할머니가 아프면 엄마가 꼭 집에만 있어야 하는 걸까?’ ‘도시락을 안 챙겨 주는 엄마는 나쁜 엄마일까?’ ‘여자는 왜’로 대표되는 이 질문들은 두고두고 고민해 볼 만한 생각들이다.
만화가가 그린, 재치가 넘치고 개성 있는 그림 그린이 정용연은 만화가다운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하여 재치 넘치고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렸다. 열세 살 가영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우주로 확장시켜 전개함으로써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재미있는 상황설정은 그림 읽는 재미를 준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