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생명에서 만들어가는 삶 인간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생물의 특성과 생태적 지위는 환경과 게놈 DNA, 그리고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사실 각 개체의 생태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DNA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에 사는 사람, 들에 사는 사람, 도시에 사는 사람의 생태형이 다른 것은 오랜 세월 고된 풍상세월을 거쳐 각기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화(分化)이다. 유전자와 환경은 오늘도 이렇게 서로 맞물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특성과 지위를 바꾸고 있다. 한 쌍의 청춘 남녀가 만나 만들어낼 수 있는 칠십 조의 수정란 중에서 오직 단 하나의 생명체만이 만들어지듯이 생명체 탄생의 가능성은 이미 제한된 확률 게임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사위를 굴리듯 단순히 칠십 조 분의 일의 가능성에 의한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어떤 정세포와 어떤 난세포가 수정란으로 선택될 것인가는 아직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래서 생명공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 “고수(高手)의 도공이 도자기 작품을 만들기 전에 조용히 마음을 모으고 합장하여 기원을 드리듯이, 청춘남녀도 한번쯤 마음을 모아서 칠십 조의 확률 가운데서 선택될 그들의 수정란을 위하여 두 손을 모아 정성껏 기원을 올리는 것은 지극히도 과학적인 일일 것이다.”
“과학을 넘어서는 생명체의 비밀”- 레디메이드 인생인가? 우리의 삶에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많은 것처럼 생명체의 탄생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체의 구성 요소는 물질 이상이다. 그 구성 성분을 적절한 비율로 아무리 재조합 한다고 해도 생명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히 인간 밖의 영역이며 더불어 초월적 존재 혹은 신의 영역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레디메이드가 아닐까?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 핵산, 무기물 등으로, 이러한 분자물질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 황, 인 등의 원자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들을 아무리 정확한 비율로 다시 섞어놓아도 생물체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신은 흙으로 생명체를 빚었지만, 오늘의 과학은 아무리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무기물질을 섞어 빚는다 해도 생명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이 세상에는 비가역적인 일이 많다. 엎질러진 물과 한번 꺼낸 이야기가 그렇고, 떠나간 사람도, 한번 피고 진 꽃도 그러하고, 우리들 인생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미 정해진 유전자를 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여러 존재하는 유전자 중에서 내가 선택하는 유전자만이 작동한다. 생명의 중심 축인 단 하나의 원동기는 레디메이드이지만, 그 원동기에 걸려 있는 여러 유전자의 선택적 작동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만들어가는 몫이다. “유전자는 어쩌면 방앗간에서 이리저리 피댓줄에 걸려 돌아가는 기계와 같다. 필요에 따라서 피댓줄을 걸면, 콩을 가는 기계, 불린 쌀을 빻는 기계, 국수를 빼는 기계, 가래떡을 빼는 기계가 돌아간다. 돌아가는 기계들은 많지만 가만히 보면 원동기는 하나여서, 원동기가 꺼지면 모든 기계는 멈추어 선다. (……) 유전자의 움직임은, 원동기를 따라 돌아가는 방앗간의 기계처럼 생명의 원동기를 따라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어느 피댓줄을 걸 것인가는 전적으로 방앗간 주인의 마음인 것처럼, 어느 유전자에 피댓줄을 걸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마음이다.”
“생명공학의 질서를 통해 배우는 우리 사회의 생태학” 지구가 탄생한 지 약45억 년, 우주가 탄생한 지 약 150억 년. 그 오랜 세월 동안, 생명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질서는 여러 진화를 거치기는 했지만 그 기본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수십억 년 동안 생명체가 살아온 방식을 요약하면 “환경에 대한 유전자의 대응과 적응”이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그것이 우리 생명체의 질서를 유지해 온 진리이다. 반면, 인간이 만들어가는 우리 사회의 생태는 어떤가? 늘 변화무쌍하고 위태위태하기에 불안하다. 무질서가 질서를 이기고, 온갖 편법이 정도를 넘어선다. 생명공학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저 효율의 에너지 생산 경로로써 무한 증식하여 결국 숙주의 생명에너지와 자신까지도 파멸시키는 암세포의 증식에 비길 수 있다.
“구조보다는 제어를!” 달릴 줄만 알지 속도를 가감하거나 멈출 줄은 모르는 우리의 바쁜 사회 생태를 돌아보면, 우리는 매우 하등한 생존을 영위하고 있음을 유전자를 통해서 배운다. 일을 작동하게 하는 구조유전자는 오히려 단순한 기능을 하지만, 그것을 제어하는 유전자의 기능은 매우 복잡하다. 그러므로, 제어유전자의 발달은 고등생물을 반증하는 척도가 된다. 우리의 사회적 생태에서도 이러한 제어시스템의 발달은 우리 삶의 질적 풍요를 보장할 것이다. 특히, 생명공학자인 저자는 가장 기본적인 신호체계조차 따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혼잡한 자동차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단순 제어만으로 통하던 과거와는 달리 우리의 현 사회는 모든 시스템이 고도로 제어되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사람의 의식도 고도의 제어성이 요구된다. “켜고 끄는 2단계의 제어 사회에서 무한 제어 사회로 변화한 것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