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계몽의 스피커, 소리! 쇼윈도를 걸어 나온 ‘소리’들 복제되는 소리, 전기 테크놀로지의 마력 소리의 재편 : 광장에서 밀실로, 다시 광장으로?
근대 도시에는 ‘소리’가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는 ‘소리’의 풍경이 있었다. 근대는 사람들의 시각과 청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시계, 라디오, 전화기, 축음기 그 모든 것들의 소리가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는 기차 소리에 사람들은 저것이 바로 ‘문명의 소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전차 소리, 인력거 소리, 플랫폼에 울리는 나막신 소리, 이 모든 소리는 ‘도회의 소리’이고, 이는 충격적인 근대의 소리였던 것이다. ‘계몽의 빛’은 청각화 되었다. 시계소리, 나팔소리, 유성기 소리는 계몽을 문화적으로 상징하는 도구의 일종이다.
사이렌 소리. 신체를 훈육하다 “뾰족한 소리, 빽 지르는 소리”로 묘사되는 사이렌 소리는 이태준이 본 것 같이 교통순사의 날카로운 시선과 같은 것이다. 절도와 기개의 표상으로 보이는 구령소리는 공장에도 도입되었다. “사이렌이 -뛰 하고 울리면 모든 노동자가 일손을 놓고 밥을 먹는다.” 출퇴근 시간, 휴식시간, 점심시간을 사이렌 소리로 통보하는 이런 문화는 결국 통제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역이용한 사건도 있었다. 사이렌 소리에 맞춰서 행해야 하는 황성요배에 대항하여 송도중학교 학생들이 구령에 맞춰서.. ‘우--우--우’하는 함성소리를 내뱉어서 항의했던 사건이 그러한 경우이다.
피아노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 재산목록 1호 피아노!! 1910년대에 음악회는 당시 사람들을 모으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1920년대부터는 서양음악은 예술의 한 종류로 당대를 풍미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나가자, 라디오 방송과 유성기 레코드의 대중적 보급으로 인해, 음악은 이제 고상한 취미의 일종이 되었다. 모던 보이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갖추면 어떤 집이든 스위트 홈이 된다고 믿었고, 음악 좀 알면 자유롭게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노총각은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 양옥집, 자동차, 이것을 구비하였거든 어느 처녀가 그의 인격을 돌아보겠는가?” 피아노는 이처럼 재산 목록 1호이자, 연애의 매개체였다.
애달픈 기타소리와 섹스폰 소리에 이끌려 1930년대 청년들은 다방에서 카페와 바로 발길을 옮겼다. “긴 허리, 미끈한 손길, 분 냄새, 루즈, 웃음소리, 화끈한 입김”을 발산하는 그들은 애달픈 기타소리와 한탄하는 섹스폰 소리에 이끌려 카페에서 방황한다. 또한 스윙재즈는 유성영화와 결합하여 유행하고 있었으며 술취한 재즈가 카페 유리창을 헤치고 거리로 범람했다. 춤바람 난 지식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음악의 범람과 무관치는 않았다. 라디오의 등장 또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라디오는 상품 판매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라디오를 가져다 놓으면, 이발소, 목욕탕, 식당 같은 곳에서도 장사가 더 잘 되었다. 라디오는 사람을 모으는 삐끼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었다.
영화 볼 때는 전화 온 손님을 찾지 마시오. 전화는 비교적 일직 조선에 도입되었다. 1930년대에는 공중전화가 가설되어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당시 극장에 설치된 전화를 관람객을 찾는 전화가 종종 오곤 하였다. 그래서 전화가 오면, 영화 상영 도중 안내원이 큰 소리로 손님의 이름을 불러 일대 소동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래서 조선극장은 스크린 옆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유리로 막은 뒤, 그 유리 뒤에서 전화 온 사람의 이름을 써놓고 전등으로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화가 사랑을 꽃피우는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하였다.
새로운 소리의 시대 근대 사회가 만들어 낸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는 모두 근대 문명의 신속한 속도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며 인간의 삶을 재조직하였다. 자본의 속도만큼 사람들은 소리의 속도에 익숙해져 간다. 소리 새로운 근대의 풍경이었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