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경배하는 날 나는 태어났다 나를 여자로 만든다고 했다 나도 이제 여자가 되었다 첫경험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린다 영감은 지금도 니를 원해! 아이 열두 명을 낳았다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 아이를 잡아가는 귀신 고빈다! 오, 고빈다! 역신 마라아따가 도착했다 전통을 깨트리지 마라 물의 정령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망자의 영혼 도둑질만 하는 사람들 신이 정해준 대로 살아라 아들아. 우리는 천민이다 우리들의 신에게 돼지를 공양했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우리들만의 육두문자 사랑은 선택이다 귀신을 물리는 사람들 황소 퐁갈과 드라우파디 축제 주인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천민이다
용어해설 해방으로의 여정- 맥락으로 본 달리트의 생애사 옮긴이의 말 - 저항과 순종의 역사
이 책은 비람마라는 한 불가촉천민의 개인사이지만 그녀의 일생은 인도 사회의 현실에 내재한 모순과 갈등의 표현이다. 그녀의 삶 깊숙이 자리한 신들의 세계는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견고하게 자리한 영성이다. 그리고 억압받고 소외당한 비림마의 일생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이 책은 비람마라는 불가촉천민 여성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화자가 구술한 내용을 채록하여 옮긴데 그친 것이 아니라, 채록한 내용을 다시 화자에게 들려주어 이야기한 내용을 대조하고 확인하는 방식으로 기술한 저서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비람마는 남인도의 타밀나두 주 퐁디체리 근처 카라니라는 농촌마을에서 ‘불가촉천민’인 파리아의 딸로 태어났다. 파리아(pariah)는 파라이야르(Paraiyar)로 ‘천민’ 혹은 ‘최하층민’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불어, 영어권 표현이다. 이 책은 불가촉천민인 비람마와 중산층 출신 조시안 라신느와의 10여 년에 걸친 대화의 산물이다. 두 여인은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신뢰와 호의로 아주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수치스럽게’ 여길 수도 있는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불가촉천민 여성으로서의 인생역정을 비람마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다. 두 사람이 감정적인 교류는 물론 세세한 일상사까지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생애사 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카스트제도의 주변인 지금 인도에는 불가촉천민이 약 3억 명에 이른다. 불가촉천민에 대한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가난과 편견, 억압으로 가장 소외받는 계층으로 불가촉천민은 인도 사회가 풀어야 할 암적 존재이다. 불가촉천민이라는 용어가 법적으로는 폐지된 말이지만 그들의 삶은 아직도 인도사회에서 불결하고 감히 마주 할 수 없는 불경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불가촉천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 밖에 존재한다.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카스트 제도는 사제계급인 브라만,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크샤트리야,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바이샤 그리고 공예사 이발사 세탁부 등과 같은 서비스 직종과 농업에 종사하는 수드라로 구성되어 있다. 불가촉천민은 이런 카스트 체계의 바깥에 존재한다. 따라서 카스트제도의 주변인인 불가촉천민과는 같이 음식을 먹을 수도 없으며, 우물물도 같은 두레박으로 마시면 오염된 것으로 생각했다. 사원에 출입해서는 안 되며 어쩌다 그들이 사제의 설교를 들었다면 귀에 납물을 부어 막아야 했다. 이들과 접촉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림자와 닿는 것마저도 오염되는 존재를 의미했다. 인도 헌법은 이 모든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분의 불평등과 함께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착취당하고 있다. 불가촉천민은 대가없는 노역이나, 마을 내 청소, 동물의 사체처리, 무덤파기, 기타 잡일에 강제로 동원되기도 한다. 인도 독립 후에 토지재분배정책 실시로 얼마간의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받기도 하였지만, 불가촉천민들 대부분은 단순노무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비람마도 소작농으로 농업에 종사하며 산파노릇을 하고 있다. 한편 이 책에는 불가촉천민의 다양한 직업이 나오는데 카스트 제도 밖에 존재하는 그들이지만 불가촉천민도 그들 나름의 카스트로 조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래된 질서에 대한 순종과 저항 불가촉천민들의 종교 정치 사회적 차별은 지금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 책에서도 비람마는 자신이 불가촉천민임을 받아들이는 파리아라는 명칭을 버리지 않는 반면에 불가촉천민의 불평등에 대해 의식화되어 있는 비람마의 아들은 ‘달리트’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달리트는 ‘억압받는 자’라는 의미로 자신들의 불평들을 종교적 숙명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고 있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현대 인도 사회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불가촉천민의 권익을 위해 변화를 시도했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신의 자녀인 하리잔이라 부르며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했다. 1997년에는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 출신 대통령으로 나라야난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회에 뿌리깊게 내린 카스트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엔 아직도 요원하다. 그러므로 지금도 불가촉천민의 삶은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 온 가난, 문맹, 차별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행해지는 살인과 강간, 정치적 폭력 사건들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또한 지주계층들에게 모욕당하고, 짓밟히고 억압당한 채 대대로 빚에 몰려 살아간다. 이런 사실은 이 책에 기술된 비람마의 생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렇지만 비람마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전생의 업으로 자신이 비천한 존재로 태어났으며 이러한 업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신분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비람마의 힌두교적 윤회관은 대다수 불가촉천민이 갖고 있는 공통된 인식이었다. 불가촉천민이 정치적으로 의식화되기 시작한 것은 간디 이후의 현대사에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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