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 버스 타고 세계를 여행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법한데, 실제로 그 꿈같은 도전에 성공한 이들이 있다. 한국인 최미애와 프랑스인 루이 부부. 이들은 지난해 자신들의 중고 버스를 직접 운전해 가며 서울에서 파리까지, 파리에서 다시 서울로 318일 동안 4만 km 거리를 여행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여행에 관한 기록이며,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이들의 여행은 무척 독특하다. 우선 버스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에 아직 전례가 없다. 게다가 어른들도 힘든 여행길에 아홉 살 난 아들 이구름과 두 살배기 딸 릴라, 그들의 애견 꼬꼿까지 동행한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배낭여행자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여정은 이들의 관심 밖이다. 그들이 지나간 길은 먼지구름이 이는 비포장도로, 모래바람이 거센 사막의 길, 유목민들이 만들어놓은 초원의 길이다. 그래서 굉장한 문화 유적을 만난 것도, 수려한 경치를 찾은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강원도 정선이나 태백, 경상도 봉화나 청송 등의 오지를 여행한 셈이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이들 가족의 오지 여행은 말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다. 아내는 패션모델 출신 메이크업 아티스트, 남편은 사진작가. 먼 여행길에서 이들은 몇 가지 의미 있는 작업을 병행했다. 이들은 '뷰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여행길에서 만난 여인들을 대상으로 메이크업을 해주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고 굉장한 미인들을 모델로 한 것도 아니다. 문득문득 눈에 띄는 현지의 여인들, 그 나라의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여인들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변변한 가족사진 한 장 없는 오지의 사람들을 위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프린터로 뽑아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동원하지도, 요령 있게 감성을 포장하지도 않았다. 꾸밈없는 오지 사람들의 삶을 접한 여행자답게 글이 진솔하고 담박하다. 아내가 쓴 글과 남편이 찍은 사진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독자들은 그들의 버스에 올라 사막과 초원을 달리며 이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느끼고,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버스 타고 서울에서 파리까지 간다면 서울에서 집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은 저자 부부는, 필요한 경우 집에 버금가는 공간으로 쓰고자 1,005만원을 주고 중고 마을버스를 샀다. 그리고 남편 루이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손수 버스 안에 침실, 거실, 욕실, 부엌까지 만들며 캠핑카로 개조했다. 이후 그들에게 버스는 집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번 여행을 결행하는 데도 중대한 동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여행이란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의 탈출구, 혹은 일탈의 방법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삶이 조금씩 무미건조해지고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간다 싶으면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패션모델과 사진작가로 만나 결혼한 뒤부터 이들의 방랑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아시아의 오지만을 골라 여행하며 오지 여행의 '기본기'는 충분히 익혀두었다. 그래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부부끼리만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준비 과정이 꽤나 복잡하고 힘들었다. 2001년 8월 30일, 이들은 마침내 전 재산을 처분하고 아내의 고향에서 남편의 고향까지 여행길에 나섰다. 먼 나라 사람끼리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만큼 각자의 고향을 오가는 여행은,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나 다름없었다. 한국에서 프랑스까지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이들 부부의 문화적 차이만큼이나 먼 거리다. 아내는 남편의 고향으로 가는 길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 궁금했고, 그 길을 따라 여행하다 보면 남편에게 가는 길도 보일 거라고 믿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중국까지는 배편을 이용한 뒤 중국에서부터는 버스를 몰고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장장 91일 만에 프랑스 땅을 밟는데, 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버스 타고 머나먼 시댁까지 간 셈이다. 처음의 계획은 서울에서 파리까지 편도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파리에서 마음을 바꾸어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버스를 타고 여행하겠다는 대단한 결심을 한다. 이들이 택한 길은 프랑스-터키-이란-파키스탄-인도-네팔-티베트-중국이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올해 7월, 꼬박 318일에 걸친 여행이었다. 이번에 펴낸 '버스여행' 1권은 서울-파리 구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12월초에 선보일 2권에서는 파리-서울 구간이 실릴 예정이다.
가난하지만 눈빛 맑은 사람들 "저 빨리 돈 벌어야 해요." 여행에서 돌아와 저자는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했다. 어서 빨리 돈을 벌어서 오지에 살고 있는, 가난하지만 눈빛 맑은 사람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 있단다. 이번 여행에서 절실히 느꼈던바, 바로 오지 사람들이 최소한의 문명을 누리고 살도록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들을 위한 공동의 수도 시설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가난한 농부와 그의 아내, 양치기 노인과 소년, 시장 상인들…. 이번 여행길에서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감싸 안고, 그네들을 떠올리며 자주 눈시울을 적신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악토베 시장에서 반찬을 팔고 있는 고려인 할머니의 가슴 아픈 개인사는 그의 마음을 내내 우울하게 만들었다.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눠본 정도에 불과해서 할머니의 이름조차도 모르지만…. 중국의 둔황 근처에서는 경운기에 깔려 죽어가는 한 농부를 버스에 싣고 병원으로 후송해 생명을 구해주기도 했다. 보드카에 취한 남자들의 이유 없는 공격에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부패한 경찰과 맞닥뜨리며 분노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가운데 낯선 이방인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준 현지인도 있었다. 중국 신장성의 투르판에서 만난 위구르족은 그녀에게 이런 깨달음을 선사했다.
"그녀의 집은 참 소박하고 편안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한국의 집들을 떠올렸다. 사용하지도 않는 많은 물건들을 쌓아두고, 또 장식은 왜 그리 많은지…. (중략) 꼭 필요한 물건만 갖추고 사는 질박한 삶. 우린 어쩌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위구르족의 초대」 중에서
오지에서는 변변한 교통수단 하나 만나기도 힘든 일이다. 버스로 여행한 덕분에 이들은 오지 사람들에게 약간의 보탬이 되기도 했고 그런 가운데 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추운 밤중에 도로변에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기란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일단 버스를 세워 방향을 알아본다. 방향이 같으면 태워줘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고나 할까.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슬퍼져 금세 속으로 울고 만다. 트럭이 지나가지 않으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을 그렇게 도로변에서 잠을 자며 기다린다. 그들의 삶은 거칠다. 하지만 거짓이 없고 순수하다. 우리들처럼 온갖 계산으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살지 않는다.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삶…. 삶의 본래 모습은 저런 것이 아닐까." -「중국｜엄마, 부대찌개는?」 중에서
길위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구름(아이가 스스로 지은 한국 이름. 이 구름, 저 구름 할 때의 그 뜻)과 아직 어리기만 한 릴라(불어로 라일락이라는 뜻)에게는 여행이 어땠을까? 여행 중에 이구름은 늘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고, 중국인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개울물에서 장난치다가, 또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오지 아이들에게 자랑하다 엄마한테 호되게 야단맞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여행을 통해 보고 배운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학교에 빠지는 대신 이구름은 하루 두세 시간씩 아빠한테서 수업을 받았다. 버스가 달릴 때는 글씨가 비뚤어진다고 투덜대지만 너른 초원에서 공부할 때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였다. 산, 낙타, 양, 당나귀, 사막….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두 살배기 릴라는 말문이 트여 이런 말들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여행을 즐기며 현지인들의 귀여움을 톡톡히 받았고, 늘 새로운 친구들과 자연을 만나며 혼자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부쩍 커버렸다. 이 책에는 여행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아이들과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 적절히 엇갈린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오지의 엄마와 아이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는 남다른 면이 있다.
정겨운 시선으로 담은 모노 톤의 사진 이 책에 실린 사진은 최미애의 남편이자 사진작가인 루이가 찍었다. 사진만으로도 책을 놓치기가 아깝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 작품들이 120여 컷 정도 실려 있다. 목화를 실은 당나귀 수레에 탄 위구르족 아버지와 딸,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벌거벗고 뛰노는 이구름과 릴라, 초원의 유목민 가족, 양치기 소년과 이구름, 지중해에서 만난 히피 여행자 등의 인물 사진을 비롯해 아랄 해의 무성한 갈대,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국경 근처의 길, 버스에서 내다본 눈 덮인 러시아의 길, 터널 끝자락에서 바라다본 유럽의 해안 도로 등의 풍경 사진이 넉넉하게 담겨 있다. 현지인들의 표정과 이들의 여정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은 다른 여행 에세이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것들이다. 참고로 11월 18일부터 23일까지 프랑스 문화원에서 루이와 미애의 여행사진전이 열릴 예정이다. 특히 19일에는 아이들을 비롯한 그의 가족 모두를 만날 수 있고, 여행하는 동안 타고 다닌 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