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대학생이다 열한 살에 입학한 우리 할머니 야구하는 할머니 아빠랑 나는 누구 머리를 닮았지? 채소밭, 요술밭, 사랑밭 컴퓨터로 공부하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 텔레비전에 나왔다 바궈 버린 성적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김석이고, 일흔두 살에 방송대학 1학년에 입학한 ‘허말분’ 할머니와 함께 살아요. 할머니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대신 나를 돌봐주시죠. 내 친구들은 ‘허말분’이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 할머니를 ‘말똥구리’ 할머니라고 놀리지요. ‘분’이라는 한자에 ‘똥’이라는 뜻이 있다나요? 별명은 좀 그렇지만 우리 할머니는 대단해요.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열한 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돈이 없어 중학교에는 갈 수가 없었대요. 늘 공부가 하고 싶었던 할머니는 일흔 살이 되어서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믿음으로 공부를 시작해 3년 만에 검정고시를 거쳐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답니다. 노인정 입구에 걸린 커다란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더욱 자랑스러워요. 내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를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에요. 우리 할머니는 나와 내 친구들의 야구 연습을 위해 투수가 되어 주기도 하고,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린 동네 공터를 일구어 멋진 텃밭을 만들고 배추를 키워 내 번 돈으로 농아학교에 라면과 과자를 기증하기도 하신답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나와 내 친구들이 ‘바보, 애자!’라고 맘껏 놀리는 지만이 형과 대화하기 위해 수화도 배우고, 할머니 때문에 우리 아파트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주민들 전체 반상회도 열려요. 나는 거기서 유치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어요. 가정의 달을 맞아 노인정 행사를 열어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 준 사람도 바로 우리 할머니예요. 참, 우리 할머니는 텔레비전에도 나왔어요. 우리 할머니가 텔레비전에 나오던 날 우리 동네는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컴퓨터’예요. 할머니는 내가 장난감처럼 다루는 컴퓨터를 어려워해 쩔쩔매신답니다. 한번은 컴퓨터를 켜 놓고 숙제를 하던 할머니가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숙제를 내는 시간을 놓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지요. 또 하나 우리 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범인은 바로 할머니의 ‘성적표’랍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몰래 꺼내 보며 한숨짓는 날이 많아요. 우연히 보게 된 할머니의 성적표에는 ‘F’가 세 개, ‘D’가 두 개 있었는데 ‘F’는 빵점과 같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할머니의 성적표를 제자리에 몰래 갖다 놓고 며칠이 훌쩍 지났어요. 할머니 생신날이 되었지요. 나는 할머니께 선물로 편지가 든 봉투를 드렸답니다. 돋보기를 끼고 편지를 들여다보던 할머니는 이거야말로 내 생일 최고의 선물이라며 기뻐하셨답니다. 엄마가 대학 교수인 친구 미란이에게 지우개 세 개를 주어 가며 만든 성적표를 드렸거든요. 그 성적표에는 다섯 과목 모두가 ‘A’였답니다. 할머니는 나를 껴안고 말씀하셨지요. 성적이 전부가 아닌데 잠시 마음이 조급했다고요. 배울 수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잊으셨다고요. 나한테 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하라는 당부도 하셨어요. 할머니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몹시 기뻤어요. 우리 할머니가 예전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되찾았으니까요.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답니다.
‘공부’와 친한 친구가 되게 해 주는 책! [바꿔 버린 성적표]는 일흔두 살에 대학생이 되어 공부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할머니와 공부하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손자가 엮어 가는 경쾌한 이야기 속에서 ‘공부’는 왜 하는 것이고, 왜 제때 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공부’를 하면 무엇이 좋은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하는 저학년 동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믿음으로,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나마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해 대학생이 된 ‘말똥구리’ 할머니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고 잠시 낙담하지만,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사람을 현명하게 변화시키는 무한한 에너지가 공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이를 손자 석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