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으로 가자 함께 떠나는 밤 내 기억의 가장 따스한 곳, 그 오두막 등 푸른 생선을 먹는 아침 상은의 일기 녹색의 시간 세월의 푸른 낫 망각의 숲, 서른 살의 식목일 종이로 지은 집 이별이 시작될 때 열한 번째 사과나무 눈물
에필로그
▶ 이 남자의 사랑을 보라, <열한번째 사과나무> 작품 속으로...
상은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둘 다 열여섯 살이었다. 상은은 내가 다니는 중학교의 재단 이사장이며, 마을의 사과밭을 절반 이상 소유한 사람, 한때 도시로 나가 가발 공장 사장이 되었던 유사장이 그때 공장 직공과의 사이에서 본 딸이다. 백혈병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본가에 들어와 살게 된 것. 상은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 지극히 내성적인 한 사춘기 소년의 내면에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으로 자리잡는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지독한 사랑의 시작이다. 그 해 식목일. 영어 선생님의 인솔하에 사과밭에 도착한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가 담긴 유리병들을 사과나무 아래에 묻는다. 10년 후, 이 자리에서 유리병을 파낼 때, 우리 모두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유리병과 함께 묻은 우리의 사랑은 무사할까. 지목한 사람이 엇갈리지 않은 두 개의 편지는 한 유리병에 넣어졌다. 같은 유리병에 담긴 상은과 나의 편지도 사과나무 밑에 묻혔다. 열한 번째 사과나무 아래. 상은을 향한 아픈 짝사랑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그러던 중 상은은 전학을 간다. 아버지는 나에게 몇 년 안에 사과밭을 사겠노라는 당신의 꿈을 들려준다. 졸업을 한 나는 농고에 진학하게 되고, 상은은 도시의 명문 여고에 입학한다. 이듬해 여름, 상은은 엄마를 잃는다. 고3,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사랑의 열병으로 인한 긴 방황 끝에 대학생이 되어 상은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가난한 아버지에게 진학의 뜻을 알린다. 아버지는 사과밭에 대한 꿈을 포기하게 되고, 나는 공부에 열중하는 한편, 상은의 이복동생인 상희의 공세에 시달린다. 그 해 추석, 상은이 고향에 돌아온다. 보름달이 뜬 사과밭에서 재회하게 되는 상은과 나,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그리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수. 양조장집 큰아들로 근동이 다 아는 내놓은 망나니로서, 전부터 상은에게 과심을 보여왔던 인물이다. 그날 밤, 김대수 패거리들에게 폭행을 당한 상은. 실신에서 깨어나 칼을 품은 채 패거리를 찾아나선 나. 이 사건은 나와 상은에게 결정적인 상처가 된다.
입시가 끝나고도 상은은 나타나지 않는다. 자책감과 그리움 때문에 절망하던 나는 재수 생활을 시작하고, 드디어 상은이 다니는 대학에 합격하여 상경한다. 대학에서 다시 만난 상은. 시인이자 투사인 오선배를 사랑하는 상은 역시 운동권에 몸담고 있다. 입학 첫해 5월, 나는 교내 시위 대열 속의 상은과 선두에 선 오선배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안타까운 사랑을 간직한 채, 상은이 들어 있는 서클에 가입하는 등 상은의 주위를 배회할 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던중 같은 대학에 다니는 민지를 만나게 된다. 부유하고 자신만만하며, 이상적이기보다는 현실에 밀착된 삶을 사는 민지는 상은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알면서도 나에게 거침없이 접근해 온다. 한편, 상은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오선배와의 사랑에 여전히 번민한다. 생일날, 민지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상은의 연락을 받은 나는 오선배를 위한 마지막 송별회에 참석한다. 자리가 끝난 뒤 마지막 밤을 오선배와 함께하고자 하는 상은이 오선배와 여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뒤로 하고, 생일 파티를 해주겠다는 민지가 떠미는 대로 민지의 아파트에 간 나는 그날 밤 민지와 첫 섹스를 한다. 다음날, 오선배는 교정에서 투신하고, 격렬한 시위가 이어진다. 척추골절. 불구가 된 오선배의 병상을 지키는 상은. 그런 상은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는 나. 결국 오선배는 상은의 사랑을 뿌리치고 출국한다. 마침내 나는 상은에게 최초로 사랑의 고백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답장은 오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고 새해 연휴가 끝나고서야 거절하는 상은의 답장을 받는다. 그리고 나의 기나긴 좌절과 자학과 방황의 나날들. 새학기가 되었고, 잊어버리자고 잊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는데, 상은을 떨칠 수가 없는 나는 상은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열정과 민지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헤맨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상은의 다급한 전화. 대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와의 결투에서 기선을 제압함으로써 화해 아닌 화해를 하게 되고, 상처 입은 나는 상은의 방에 잠시 머문다. 나는 계속 상은의 곁에 머물고 싶지만 그녀는 나를 자신의 밖으로 밀어낸다.
개강. 쓸쓸하고 수상한 5월의 캠퍼스. 그 무렵 나는 다시 상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구속과 제적을 각오하고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상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비련의 눈물을 흘린다. 가지 말라고. 결국, 상은은 당국으로부터 수배를 당하게 된다. 나는 도피 길에 오른 상은을 배웅하기 위해 그녀와 며칠간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운명의 새 국면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나와 상은은 고향의 사과밭에서 함께 지낸다. 6년 전, 유리병을 묻었던 날을 기억한다고 상은은 말한다. 그땐 왜 몰랐을까, 남자아이의 수줍음이라는 걸…. 불안하기 짝이 없는 도피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꿈 같은 나날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이토록 오래, 가까이 있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상은에게 은목걸이를 건넨다. 시간이 흐르고 상은은 읍내 경찰서에 자수할 것을 결심한다. 저녁이 찾아왔을 때, 나는 목욕물을 데우고 상은의 발을 정성껏 씻어준다. 그날 밤, 나는 감격적으로 상은의 몸과 처음 만난다. 다음날 아침, 마지막 밥상을 마주한 다음, 상은과 나는 사과나무 아래에 묻은 유리병을 캔다. 상은이 쪽지를 다시 써 넣고 싶다고 해서다. 들어 있던 쪽지는 나눠 갖는다. 서른살 식목일에 다시 오기로 하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며칠 뒤, 연행되어 강제 입영을 하게 된다. 면회온 민지를 통해 상은이 1년현을 선고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휴가 때 나는 상은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를 찾아가지만 상은을 만나지는 못한다. 군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상은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거기에는 만나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씌어 있다. 제대. 나는 백방으로 상은의 소식을 수소문하지만 그녀를 만나지는 못한다. 시간이 흐른 후 상은은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으며, 연락처 또한 알 수 없다는 말을 민지로부터 전해 듣는다. 나는 복학을 했고, 민지는 방송국 프로듀서로 입사하여 능력을 발휘하나다. 졸업을 한 나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던 해의 식목일, 사과나무 밑에서 나는 상은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다. 엇갈린 운명의 비극적 전조, 나는 이제 내 삶에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결국 민지와 결혼한다. 유산으로 인한 민지의 심한 우울증 탓에 둘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다. 게다가 민지는 어이없게도 상은과의 관계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부부관계의 회복을 위해 찾은 제주도에서 민지는 서른에 상은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알고 있었으며, 상은의 연락처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후, 민지는 방송국에서 나와 독립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성공 가도를 달린다. 민지가 잘 나갈수록 나는 점점 열등감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둘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어느날, 나는 고향의 우체국이 건너다 보이는 카페이서 사과나무라는 아이디의 한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한송이. 자신이 사이트에 올렸던 소설은 엄마 얘기라며 자신의 집은 사과밭에 있고, 엄마가 그 사과밭을 샀으며, 지금 사과밭은 없어졌다고.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상은을 떠올린다. 엄마의 이름을 묻자, 열여섯 살 때 자신이 써서 유리병에 넣었던 편지를 송이는 내민다. 엄마의 임종을 부탁하며. 상은과의 재회. 마지막 남은 사과나무 한 그루, 살아온 얘기, 식목일에 오지 못한 이유, 민지와 있었던 일, 나와 민지와의 결혼, 독일 생활…. 상은은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뿌려달라고, 그리고 사랑은 양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다. 나는 상은의 목에 내가 준 은목걸이가 걸려 있는 것을 본다. 나는 사과밭에서 닷새를 머문다. 나흘째 되던 날 저녁, 상은이 내 발을 씻어준다. 그리고 내 발등에 입을 맞춘다. 나도 상은의 발을 씻어준다. 천천히. 다음날 아침, 나는 상은을 위해 손수 죽을 쑤어 아침을 준비한다. 하지만 상은은 일어나지 못한다. 상은은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이다. 나는 물기 젖은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보리밭을 가로질러 사과나무 아래서 손을 흔드는 상은의 모습을 본다. 나도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아껴두었던 마지막 말을 한다. 사랑해.
에필로그 | 나는 민지에게 모든 사실을 얘기한다. 이튿날, 내 휴대폰에 찍힌 문자 메시지.
||^돌아와. 그냥 돌아와. 그래 어쩌면… 우리에게 다 커버린 딸이 있는 것도 괜찮을 거야.||^
▶ 이 소설 | 그 사랑이 아픈 몇 가지 이유
순수하고 영롱하며 모든 것이 눈부신 열여섯의 푸른 4월, 사과나무 아래에서의 운명적인 무주섬으로부터 이 소설의 가슴 시린 이야기는 시작된다. 4월의 햇살, 숨막히도록 향긋한 사과나무 향기, 속이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유리병. 친구들의 재잘거림, 진흙밭에 선명하게 찍히는 발자국 같은 설레임. 이 속에 불멸의 지고한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영혼의 씨앗이 숨죽이며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이 소설은 ||^사랑의 소멸||^을 통해서 오히려 ||^사랑의 회복||^을 모색하는 매우 이채로운 작품이다. 작가의 섬세한 눈과 예리한 손길은 ||^신화||^로 멀어져가고 ||^신파||^로 전락해 가는 위태로운 사랑의 부조를 실감있는 부피로 우리 앞에 되살려 놓는다. 우리는 그 앞에서 사랑의 극적인 속성이 영속적으로 지니고 있는 감동에 가슴 흠뻑 젖어들 수 있다. 거듭된 이별, 엇갈림, 망각, 질투, 욕망, 재회, 그리고 죽음, 우리는 이처럼 낯익은 소품들이 작가의 예리한 손끝에서 얼마나 특별하며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지는지를 새삼 깨닫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 가지고 있는 마술 같은 힘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어져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갸륵해지는 사랑을 확인하면서, ||^나||^는, 사랑이 ||^결과||^가 아닌 과정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가슴 저미도록 통렬하게 깨닫는다. 그 사실이 ||^나||^는 아프다. 때문에 사랑에 대한 순수한 갈망이 사랑 자체로 완성되어지는 사랑의 오묘한 섭리 앞에서 눈물 흘리며 몸서리치는 것이다. 그 개달음은 눈앞에서 사랑이 무참하게 무너져내려도, 사랑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결코 그 사랑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의 자각은 곧 사랑에 대한 도저한 확신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구 아파도 ||^나||^는 그 아픔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꿈꾸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아름답고 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의 완성이라는 애틋하며 간절한 희망을 가슴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이용범의 작품 세계
정치적으로 매우 암울했던 1980년대 중반(1985년),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문예중앙> 신인상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됨으로써 등단한 이용범이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장편소설 <열한번째 사과나무>. 이 작품은 이용범이 등단 초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역사 및 사회 현실의 탐구라는 주제에서 어느 정도 비껴 서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극심한 사회, 문화적 급변의 양상이 작가의 소설적 관심을 적잖이 교정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그가 이번 작품 <열한번째 사과나무>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화제는, 좀 거칠게 요약하자면 지고한 사랑의 완성을 통한 인간구원의 문제로 정리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은밀하게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란 희비적 속성을 내장한 결과로서의 추상화된 관념이 아니며, 그것 자체로서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갖춘 과정의 예술이라는 인식이다. 이와 같은 추정은 작품 속의 인물들이 사랑의 지속 혹은 완성을 향해 치닫는 과정 속에서 맹렬하게 존재감 및 관계의 속성을 자각하게 된다는 대목들과 마주칠 때 보다 자명해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얼핏 범박해 보이는 멜로형 스토리 라인 속에 결코 외면하거나 비난 할 수 없는, 사랑을 아우르는 진중한 인간구원의 주제를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려하게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제의 유려함과 이야기의 설득력은 작가 특유의 정확하고 미려한 문체와 섬세한 감수성, 주제를 향해 집약적으로 작용하는 작가의 자의식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소위 ||^멜로형 소설||^들이 함돌되기 쉬운 주관적 감상주의도, 이 작품 속에서는 하나의 기능적인 수완으로 읽히면서, 장편 서사구조의 경직화를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 작품이 웅변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사랑의 회복과 그것을 통한 인간구원의 주제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보다는 그것의 왜곡으로부터 오는 부박한 쾌락의 형식에 심취하는 이 즈음의 세태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작품의 심미적 지평과 예술적 형식으로서 존중받아야할 소설의 육중한 부피를 담보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 작품집의 출간에 즈음해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용범의 작가적 변신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열한번째 사과나무>는 이용범이 그간 써왔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변별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 소설쓰기를 멈추고 신과 인간의 문제, 종교와 신비주의 철학에 깊이 천착하기도 했던 이용범이 소설 작품을 책으로 내기는 근 9년만의 일인데, 단순히 그 9년이라는 세월의 갭이 그대로 이용범의 작가적 변모를 지시한다고는 볼 수 없다. 많은 주목을 받았던 등단작도 그러하거니와, 이용범의 초기작들은 하나같이 역사와 사회 현실에 대한 성실한 탐구와 고발 의식을 하나의 주조음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 이용범이 택한 고발의 표현 방식은 결코 직설적이거나 구호적이지 않다. 이용범의 눈은 삶의 구석구석 어느 후미진 곳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예리하며 부지런하다. 하지만 이용범은 그런 삶의 적나라한 속내 앞에 매우 이색적으로 ||^서성거림||^의 모양새를 취한다. 그의 그러한 서성거림은 삶의 전경 뒤에 감추어진 의뭉스러운 진실을 발견해내고 그 속성을 파악해 가는 데 결코 질곡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체적 삶의 총체성을 구현해나가는 중요한 전략으로 활용된다. 이용범 특유의 그 ||^서성거림||^ 속에는 세상과 삶에 대한 면밀한 관조와 사유의 흔적이 아로새겨 있다. 그것은 세상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건드려서 파내지 않으면서 은밀히 불러내는 형식이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 가로 놓인, 미묘한 권력의 문제, 계급의 구조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용범의 초기작들은 분명, 1980년대라는 정치적 특수 상황이 어느 정도 작가의 의식을 강제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용범이 취한 작가적 전략은 그 당신 동시대의 작가들이 즐겨 취택한 지시, 구호, 선언 등의 일반적 방식이 아닌, 은어적인 소통의 방식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열한번째 사과나무>가 가지고 있는 그 은연한 세계의 단초를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