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우상 - 존 월리스의 증언
핑거포스트 - 앤소니 우드의 증언
겹겹의 층에 숨은 역사적 진실, 그 육중한 울림
『다빈치 코드』 『단테클럽』 『4의 규칙』 등 “움베르토 에코의 적자(嫡子)”임을 자처하는 지식추리소설이 쏟아져나와 바야흐로 ‘에코학파’라 불리는 저자 군단이 만개하는 인상이다. 그러나 이언 피어스(Iain Pears)의『핑거포스트, 1663』은 그런 ‘할리우드식 기획소설’과는 분명히 궤를 달리한다. 이 소설은 방대한 인문학적 상상력과 추리가 절묘하게 녹아 있는 대단히 지적(知的)인 미스터리이다. 특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육중한 울림을 선사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영국을 비롯 구미 각국에서 대단한 평가와 명성을 받고 있는 이언 피어스의 최고작인 이 소설은 전세계 24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을 사로잡은 정통 역사추리소설이다. 이 책을 필두로 『라파엘로 사건』『티치아노 위원회』 『스키피오의 꿈』 등 ‘이언 피어스 컬렉션’이 계속해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핑거포스트, 1663』은 내란과 혁명, 공화정의 실험으로 점철된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과학·의학·신학·인식론을 종횡무진 오가며, ‘왕권’과 ‘의회주권’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 ‘연역’과 ‘귀납’이 충돌하던 시대, ‘종교적 억압’과 ‘인간의 이성’이 충돌하던 세기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는 ‘왕정복고를 둘러싼 세기적 음모’라는 역사적 진실에 닿아 있고, 역사적 진실은 인간 존재의 진리에 닿아 있다.
『더 타임즈』는 신학과 인식론, 장엄한 서사와 역사의 비극을 대담한 발상으로 그린 이 소설을 두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역사 미스터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석희의 유려한 번역도 일품이다.
세 개의 이돌라(idola, 우상 또는 환상), 그리고 핑거포스트
『핑거포스트, 1663』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증언이 모여 하나의 정교한 이야기로 짜여지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1663년, 아직 쌀쌀한 어느 이른 봄날 오후, 마르코 다 콜라라는 베네치아 신사가 옥스퍼드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이 베네치아 신사는 위대한 화학자 로버트 보일을 찾아간다. 그 후 콜라는 철학자 존 로크, 사학자 앤소니 우드, 의학자 리처드 로어, 수학자 존 월리스 등 옥스퍼드의 화려한 저명인사들과 접촉한다. 콜라는 특히 사라 블런디라는 범상치 않은 여인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옥스퍼드 뉴 칼리지의 신학 교수 그로브 박사가 의문의 독살을 당하고, 살인사건을 진술하는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제1부를 증언하는 베네치아 신사 마르코 다 콜라, 제2부를 증언하는 악명 높은 반역자의 아들 잭 프레스콧, 제3부를 증언하는 암호 해독가 존 월리스, 제4부를 증언하는 사학자 앤소니 우드가 그들이다. 네 명의 증언 중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 2부의 증언은 1부의 증언을 뒤집고, 3부의 증언은 1부와 2부의 증언을 뒤엎는다. 마지막 4부의 증언은 앞서의 모든 증언을 전복하며 나아간다. 살인사건의 진상은 17세기 영국과 유럽 군주 간의 정치적 음모로까지 확대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진실의 상대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원제 ‘An Instance of the Fingerpost’는 ‘길안내표시(Fingerpost)가 가리키는 증례’를 말한다. 17세기 초 귀납법을 확립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역저 『노붐 오르가눔』에 나오는 이 말은, 어떤 문제가 미궁에 빠졌을 때 오로지 한 길을 가리키며 모든 형태의 증거를 압도하는 독자적 증거를 뜻한다. 이언 피어스는 독특하게도 『노붐 오르가눔』에서 베이컨이 주장한 우상론, 즉 인간 지성이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네 개의 우상을 각 부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제1부는 ‘시장의 우상’, 제2부는 ‘동굴의 우상’, 제3부는 ‘극장의 우상’이다. 그러나 제4부는 ‘종족의 우상’이 아니라 ‘핑거포스트’(손가락질 모양의 길안내표시)이다. 제4부의 증언만이 유일하게 완벽한 증언이라는 뜻인가. ‘핑거포스트’는 ‘종족의 우상’에 사로잡힌 앤소니 우드의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핑거포스트’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영원히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철학 · 과학 · 종교적 열정이 폭발하던 17세기 영국으로의 초대
과학의 세기로 불리는 17세기, 옥스퍼드는 신학문의 열기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지식공화국이었다. 과학의 세기를 주름잡은 런던 ‘왕립협회’ 회원들―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 뉴턴이 등장하기 전 최고의 수학자 존 월리스, ‘인간오성론’의 철학자 존 로크, 천문학자 크리스토퍼 렌 등―을 살아 숨쉬는 사람들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이 지닌 각별한 묘미이다. 중세적 인간형과 근대적인 인간형이 마구 혼재된 이들의 모습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이 소설은 그들을 통해 ‘종교적 억압’과 ‘인간의 이성’이 격렬하게 충돌하던 17세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옥스퍼드 지식인들의 대층점에는 아름답고 강인한 여인이 자리한다. 당시로는 매우 급진적인 평등사상을 가진 사라 블런디라는 여자이다. 국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마녀 취급을 받는 여인이자 동정의 대상인 그녀는 화자에 따라 창녀에서 마녀, 구원의 여인을 오간다. 이러한 사라 블런디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이 감춰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한가운데 한 권의 책, ‘리비우스의 책’이 놓여 있다. 이 소설에서 ‘리비우스의 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리비우스의 책’을 손에 넣는 자는 지금껏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세기의 암호를 풀고 왕국의 가장 엄중한 비밀을 알게 된다. 소설의 역사적 배경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보자. 17세기 영국은 국교도와 가톨릭, 급진파와 프로테스탄트까지 온갖 종교적 열정이 활활 타오른 광란의 시대였다. 이 책은 내란과 청교도 혁명, 공화정의 붕괴로 이어지는 극도의 정치·종교적 혼란기를 무대로 한다. 이 시기, 영국은 의회파와 왕당파의 20여 년의 기나긴 내란 끝에 1649년,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 역사상 최초로 공화정을 세운다. 하지만 1658년, 크롬웰이 죽으면서 사실상 공화국은 붕괴된다. 크롬웰의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던 시민들은 꽃과 카펫을 깔고 열렬히 찰스 2세를 맞이했다. 왕정이 복고되자 가톨릭 지지자, 프로테스탄트, 공화주의자 급진파 들은 통곡하며 국교도의 탄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었다. 소설은 이러한 복잡, 미묘한 역사적 배경과 궤를 함께한다.
전세계 24개국에 번역 출간된 이 책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
『장미의 이름』에 버금가는 역사 미스터리! -『더 타임즈』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인 섬세함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재미를 결합한 소설. -『선데이 타임즈』
대단히 지적(知的)인 스릴러! -『인디펜던트』
이언 피어스는 17세기를 생생히 복원한다. 굉장한 재능이다! -『데일리 텔레그라프』
과학적 방법론과 예수회 수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편의주의와 종교적 초월에 관한 이야기. -『워싱턴포스트』
장엄한 이야기와 역사 속 개인의 비극을, 대담한 발상으로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써 내린 스릴러.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철저한 연구와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비범한 성과물. -『선데이 텔레그라프』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