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1. 피와 땀의 순교자 낳은 곳
2. 내포 땅의 영광과 상처
3. 누가 생명의 아픔을 두려워하랴
4. 이름없는 이들을 위한 기도
5. 한국교회 순교사의 축소판
6. 아 그토록 기다리던 목자여
7.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8. 역사의 땅, 배움의 땅
9. 삼남 지방으로 가는 길목
10. 신앙고백을 돌에 새긴 사연
11. 실천신앙의 선구자 홍유한의 자취
12. 한국천주교회의 얼굴
13. 한강변에 이룬 신앙의 요람
14.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15. 믿음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16. 남도로 흘러간 신앙의 강
17. 순교의 씨앗이 뿌려진 텃밭
18. 누가 예수를 보았다 하는가
19. 제주가 지킨 신앙의 성곽
20. 김대건, 최양업의 발자취를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에 녹아 있는 가톨릭 신앙의 뿌리와 문화적 토양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한국근대사에서의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솔직하게 밝히고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한국천주교회사를 재조명한 한국가톨릭 바로보기 책이 출간되었다. 글은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평화신문에서 33년간 언론인으로 일해 왔던 이충우가 썼고 평화신문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는 전대식의 영상으로 꾸몄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금기시해오던 부끄러운 교회사의 장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밝힌 점이다. 특히 초기 이 땅에 파견된 외국인 선교사들과 일제시대 교회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행적에 대해 여태까지 호교론적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평가해온 바를 한국사의 잣대로 가감 없이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1868년에 일어난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 묘 굴총 사건에 대해, 저자는 “남연군 묘 굴총사건은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심정적으로 꺼림칙한 사건이다. 조상의 묘소를 파헤치는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르는데 천주교가 한몫을 거들었다는 게 왠지 잘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선교 차원의 일이라 해도 그 같은 일을 자행한 죄과에 대해 오늘의 우리 교회가 언급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또한 우리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가톨릭대사전과 일반 백과사전의 기술은 차이점이 많다. 가톨릭대사전에서는 프랑스 함대가 처음 강화도를 점령할 당시 민가에까지 침입하여 도자기, 직물, 은괴, 역사서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장서를 약탈한 사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수산성에서 패전하자 민가와 군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던 점,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강화성의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른 만행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나는 가톨릭대사전이 왜 프랑스 군대의 만행을 기술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평가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 종교적 이유 때문에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되거나 폄하되고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라고 적고 있다.
1901년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제주민란에 대해서는 교회의 시각과 더불어 이규태의 『역사산책』, 소설가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를 인용한 일반 제주도민의 시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고해성사를 청했을 때 ‘살인자’라는 점을 내세워 외면한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다만 빌렘 신부만이 감옥으로 찾아가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베풀었는데 이에 뮈텔 주교가 2개월간 직무정치처분을 내리자 교황청에 상소하여 훗날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등 우리 민족의 고난과 아픔보다 교회내적 문제에 관심을 쏟았고 일제 침략을 묵인 또는 방관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교회 지도자들의 행태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끄러운 역사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고백은 천주교가 서구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이긴 하지만 그것을 믿었던 사람들의 심성과 정서는 어디까지나 이 땅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들의 삶과 정서를 엮어낸 문화적 토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신앙의 토착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임을 지적한데서도 확인된다.
이 책은 북한 지방과 중국을 포함하여 100여 곳이 넘는 우리나라 천주교 관련 신앙유산 현장을 인근의 전통문화유산과 함께 섭렵하고 있는 신앙유산 답사기이다. 그러나 단순한 답사여행의 길잡이가 아니라 한국천주교회사의 역사적 흐름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가톨릭 역사의 축소판이자 그 역사성을 오늘의 시대상황으로 되살려놓은 ‘살아있는 한국천주교회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신앙유산을 현장답사하면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천주교 신앙의 모태와 지도자들의 면모, 복음이 전국으로 전파된 과정을 추적하고 오늘의 한국 가톨릭이 있게 한 사람들의 삶과 고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고귀한 얼과 뜻, 더 나아가 그것이 지닌 현재적 의미까지 밝혀주고 있다. 특히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서 천주교 신앙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 되었는지,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어떤 사랑의 실천토양이었는지를 짚어감으로써 이 땅의 신앙유산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상을 드러내고자 애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영웅적으로 살다간 인간의 자취를 찾고자 애쓰기보다 민초였던 무명 순교자들의 삶의 행적과 고뇌의 여정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흔히 한국 가톨릭이 걸어온 길을 가리켜 순교와 수난의 역사라고 한다. 200여 년 전,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후 무려 1만여 명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죽어 갔다. 이 가운데 절반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 순교자들이다. 이들은 일가족이 몽땅 순교하여 대가 끊기는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믿음을 외면하지 않고 진리를 증거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천주교 신앙유산에는 어느 곳이나 감동적인 눈물이 배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심성과 정서, 그리고 일상적인 삶 속에 녹아 있는 신앙적 풍모와 그 깊이를 저자가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끼며,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면서 감동과 환희를, 때로는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를 고뇌하면서 쓴 역사 현장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달갑게 받아들인 그들의 신앙심을 오늘의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우리 자신의 신앙고백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순교자들이 혹독한 고문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배교하지 않았다는 신앙의 위대성과 영원함을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신앙적 용기를 갖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들이 얼마나 현재의 삶을 사랑했고 그 실천에 최선을 다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혹독한 고문과 가혹한 매질 끝에 일시 배교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연약한 한 인간이기에 겪을 수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그들이 겪었을 갈등과 고뇌를 애련의 정으로 받아들이는데 더욱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대건 신부에 비해 비교적 덜 주목받아온 최양업 신부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재평가하고 있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이 땅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조차 열심히 살다 간 신앙선조들의 인품과 숨결이 서려 있고 그 땅위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신앙유산을 말하면서 결코 흘러간 역사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조명함으로써 이 땅의 신앙유산이 곧 한국인의 고귀한 자존심을 드러낸 문화유산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하여 비록 가톨릭 신자가 아닐지라도 가슴 찡한 감동과 숙연함 속에, 신자일지라도 입으로는 열심히 신앙을 외치면서 일상생활에서 실천을 소홀히 해온 데 대한 부끄러움, 이기심과 물질주의에 물든 우리들에게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인가 하는 덕목을 되새기게 해주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숨쉬게 만들어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가톨릭 신자에게는 한국가톨릭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 역사를 만든 진실과 아픔과 아름다움을 읽게 해주고, 일반인에게는 한국가톨릭의 참 모습과 참된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눈을 트게 해주는 책이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