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명한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이 없었다면 조조와 유비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왜 이 땅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세 명의 신하로 비(우사), 구름(운사), 바람(풍백)을 앞세웠을까? 지난 여름 미국을 강타한 두 차례의 허리케인이 없었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까?
날씨는 인간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회사원들은 교통지옥에 빠지거나 회항하는 비행기 안에 갇혀 다 성사된 계약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갑자기 찾아온 폭우와 폭풍으로 인해 다 자란 농작물을 망쳐버린 아픔을 모든 농부들이 한두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창세기〉6장부터 9장까지 나오는 홍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인류의 시련으로, 아마도 날씨에 의해 인간의 삶이 제약을 받은 대표적인 사건일 것이다.
1811년, 대서양의 아조렌 군도에서 화산이 폭발함으로써 생긴 역사적 결과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화산 폭발로 분출된 유황이 대기를 채우자 몇 달 동안 햇볕이 감소했고 그로 인해 이듬해인 1812년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닥쳤으며, 이것은 다시 러시아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 《날씨가 역사를 만든다》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날씨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기후 현상과 과학적 지식,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수천 년 이상 어둠 속을 더듬고 다니던 인류가 날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전쟁과 과학문명에서 날씨를 이용하는 수준에 이르는 과정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날씨로 인해 궤도가 달라진 역사적 사건들을 추적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서기 9년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로마군이 게르만 족에게 당한 패배로부터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전, 1794년 프랑스 대혁명의 좌절, 1846년 아일랜드의 대흉작,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 1962년 쿠바 위기에 이르기까지 날씨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 고려·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 임진왜란의 운명을 좌우한 승전(한산대첩)과 패전(탄금대 전투) 등 날씨가 승패를 가른 우리나라의 여러 전투도 소개한다. 국내 독자들에게 날씨와 역사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소개하고자 번역·편집 과정에서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역사 속의 많은 사건들은 인간이 다른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날씨의 협조를 얻지 못할 때 어떤 비극을 겪게 되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고도로 발달한 고학기술은 오늘도 날씨를 정복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제 인류는 인공 안개와 강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일의 날씨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갑자기 닥쳐오는 파국적인 날씨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전에 경보를 발령하고 예방 대책을 마련해 피해를 줄이려 노력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기상 변화 앞에서 매번 무릎을 꿇고 만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날씨를 완전히 장악한다는 일이 가당키나 한 꿈인가.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은 날씨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력, 그리고 날씨를 향한 인류의 오래된 꿈을 한편의 동화를 통해 압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날씨가 역사를 만든다》는 날씨와 함께 해온 인류의 궤적을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쳐 미래로 확장하는 통시적 역사서이자 공시적 과학서이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