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서시
1.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 예수는 유일신에 의한 운명결정론을 거부했다.
3. 석가는 육체를 긍정함으로써 업(業)을 이기고 중도(中道)를 얻었다.
4. 체념적 사고 만든 유교의 [천명], 삶의 즐거움 준 도교의 [상상]
5. 가족관계의 굴레로부터 탈출해야 운명을 이긴다.
6. 적당히 퇴폐해야 행복해진다
7. 햇볕이 뜨거울 때 우산을 쓰면, 신기하게도 비가 내린다
8. 쾌락으로서의 성을 부끄럼 없이 향유하라
9. 원시와 문명의 [편의주의적 결합]은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끈다
10. 이중적 의식구조를 벗어버리면 병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11. 왜 이렇게 비명횡사가 많은가-떳떳하게 놀고 떳떳하게 창조할 수 있어야 나도 살고 사회도 산다
붙이는글
마광수는 죽지 않았다!
최근 그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글을 쓰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고, 둘째, 몸과 마음이 많이 치유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즐거운사라』 필화사건의 후유증으로 학계와 문단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모든 일에 나약함을 보여줬다. 글발도 안 써지고, 2000년 재임용과정의 고충을 겪고 심한 상심과 피해의식이 커져 자신감도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그가 전시회도 갖고 또 독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가 삶의 힘겨움을 극복하고 독자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꺼내놓는 책이 바로 이것.『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다.
그는 인간은 “운명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악착같이 돈을 벌고, 악착같이 명예를 추구하다가 차츰 나이를 먹어갈수록 체념적 운명론으로 후퇴하여, 종교나 신비주의 철학에 의지해 스스로를 달래거나 자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언급한다. 그가 이런 발언을 하게 된 동기는 그 자신 역시 운명이 두려웠고 운명의 굴레를 피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정체’가 아닌 ‘운명론의 정체’를 밝힌다!?
마광수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한 내용은 ‘힘든 고비를 넘기고 그 자신이 체념적 운명론과의 힘겨운 싸움 끝에 얻어진’ 결과물이었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운명의 정체’를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론의 정체’를 밝히는 데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가족의 일원으로 또는 인생의 커다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혹은 진로와 직업을 선택해야 할 때 나아가 자신에게 시련의 고통을 주는 그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운명에 체념한 이들을 위해 새로운 운명극복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에 칼날을 들이대는 저자의 과학적인 사고와 명쾌한 분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은 마광수의 철학과 문학론을 총정리한 철학에세이다. 독자들이『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를 읽게 되면 그동안 가졌던 마광수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를 단순히 ‘야한 소설가’, 혹은 ‘성의 상품화’ 코드의 이미지로만 인식한 독자들에게, 마광수를 제대로 알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풀어갈 때 핵심을 빙빙 돌리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담’과 ‘인문학적 교양’이 사상적 토대 위에 잘 어우러져 있다. 철학적인 관점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전개된다. 종교적인 박식함과 역사에 관한 대목에서는 마광수의 새로운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다.
‘시대를 앞서 간 지식인’의 당당한 목소리
마 교수는 한국사람들이 점치기를 좋아하고 툭하면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버리는 것 역시 이 사회가 여러모로 불합리하게 움직여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성형수술로 얼굴을 고치면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은, 외모에서 오는 열등감을 극복하여 기분이 좋아져가지고 생에 대한 활력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지 관상이 바뀌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 교수가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다. 아무리 현대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인성人性은 변한 것이 없고 사회여건 역시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고대의 핵심적 사상가들의 운명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책에서 예수의 운명관과 석가의 운명관, 그리고 공맹과 노장의 운명관을 차례로 재해석한다.
여기서 그가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그들을 신격화된 존재로부터 이 땅의 평범한 인간으로 다시금 끌어내리는 일’이라고 꼽는다. 그 이유로 예수가 처녀에게서 나왔든 석가가 어머니 옆구리에서 나왔든 그것이 별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고구려의 동명성왕이나 신라의 박혁거세가 알을 깨고 나온 것 역시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 교수는 시종일관 “종교적 신화나 사실을 상징적 총체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는 유일신에 의한 운명결정론을 거부했다?
마광수는 기독교의 정신적 뿌리가 내세중심적 운명론에 있다고 보았다. 즉 예수사상의 핵심은 사랑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에 있다고 강조한다. 기독교는 “운명의 주재자로서의 유일신이 존재하고 그의 뜻에 따라 현실의 행·불행은 물론 내세의 복·불복까지 결정된다는 확실한 개념이 서 있기 때문에” 현실에 찌들린 많은 민중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아니다’를 떠나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는 또 예수가 “자식이 무조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변덕이나 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을 두고 운명적 결정론에 대한 일종의 거부라고 해석한다. 또한 예수가 부자들이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으름장놓음으로써 부의 재분배를 통한 지상적 복지국가 건설을 도모했다고 평가한다.
석가의 생각과 예수의 생각은 서로 유사점이 많다!
이를 두고 저자는 석가와 예수가 스스로의 존재를 설명하는 대목을 강조한다. 석가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는 말이나, 다같이 “인간은 지극히 존귀하다”라는 뜻에서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저자가 비유를 든 내용을 보면 이렇다.
예수가 말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따지고 보면 불교의 ‘공즉시색空卽是色’ 즉, 마음을 비우면 색(재물)이 생긴다는 말과 통하는 말이라고 지적하고,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자선과 보시를 강조한 말로서 불교와 속뜻이 통한다는 얘기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아직껏 전쟁과 기아와 질병과 인권유린 등 온갖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중생들은 운명(또는 섭리)의 힘 앞에 오직 두려워떨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나가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석가나 예수가 말한 것이 진리라고 가정할 때, 여태껏 지배엘리트들이 그들의 진리를 곡해하거나 악용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공자 역사관은 과거지향적 가치관이라고?
저자는 “깨달음이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온다는 것은 환상이다”라고 언급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남’이 괴로워야만 한다는 상대적 고정관념이 우리들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학적 고통을 스스로 유도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운명적 결정론에 근거한 유교의 계급차별의식을 들어 예수나 석가의 평등사상에 비추어봤을 때 공자의 사상은 한 수 아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는 곧 공자 역사관의 치명적 결함이 과거지향적 가치관이라는 분석을 내왔다. 예를 들어 “옛날이 더 좋았다는 사고방식은 진보적인 생각을 억누르게 만들고 특히 자유주의 사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방조를 조장하는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하도록 만든다”고 본 것이다. 즉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면 나라 발전이 늦다는 얘기다.
도교의 경우에는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보았으며, 현세적 쾌락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한 도교사상에 관해서는 “인간이 얼마든지 신이 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일라 할 만큼 반운명적이고 반결정론적인 사유 체계”라고 분석했다.
가족관계의 굴레로부터 탈출해야 운명을 이긴다!
마광수 교수는 ‘가족’은 때로는 경우에 따라 생을 무자비하게 파괴시킨다고 전제를 깔고 모든 애증병존愛憎竝存 심리의 뿌리는 가족관계에서부터라고 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는 동기는 이렇다. “가정은 겉보기엔 단란하지만 사실상 갖가지 콤플렉스들이 얽혀서 꿈틀거니는 고뇌의 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부친고착 심리의 필연적 파생물인 ‘운명’의 예를 전혜린과 햄릿의 예를 들어 문제제기를 한 것을 보면 주목할 만하다.
또한 지나친 결속관계는 지나친 반목관계로 맺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끊임없이 개인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고 가족에 대한 끈끈한 유착관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그는 개인주의는 절대로 이기주의가 아니며 개인주의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또 한탕주의의 밑바탕을 형성한다고 보는 전체주의적 봉건윤리는 개인의 창의성이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는 점을 무시하고 오직 개인을 권력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피조작자로 만들어버리려는 음흉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운명 극복과 재창조 방법으로 ‘꿈의 효용’을 들었다!
저자는 적당히 퇴폐해야 행복해진다’며 ‘인공적 길몽’과 운명에 대해 프로이트를 예로 들었다. 그는 도덕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관점으로 프로이트를 접근했으며 운명의 적극적인 개척방법으로서의 ‘인공적 길몽’의 창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인공적 길몽’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운명을 재창조한다고 보았다. 이는 심신의 안락과 행복, 나아가 건강한 정서 등은 모두 다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일치’ 여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