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바이킹호의 세계경제 침략기
1989년, 출판계의 불황으로 문단의 신진작가들이 생계유지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문열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김우중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그날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김우중은 흔쾌히 이문열의 부탁에 응하면서 말한다.
“이 나라에서 그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 작가가 유독 나를 골라 부탁해주어서 나 같은 사람도 작으나마 문단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납니다.” 이문열은 부탁을 들어준 것 자체보다 부탁을 들어준 김우중의 마음가짐에 훨씬 감동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문열은 김우중의 초청으로 김우중과 함께하는 해외시찰에 동행한다. 15일의 여정 동안 이문열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는 ‘일중독자’ 김우중의 면면을 바로 곁에서 목격한다.
대우가 있습니다
6월 15일―김우중이 귀국한 다음 날, 조선일보에는 매우 독특한 광고가 실렸다. <대우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대우’의 전 가족이 김우중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경남관광여행사 대표 최영국이 사재를 털어 게재한 이 광고는 자신이 대우의 울타리에서 성장한 데 대한 김우중에 대한 보은의 마음이 담겨 있어 사뭇 감동을 자아낸다.
이 외에도 조남홍의 글은 친구인 김우중의 진솔한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보편적인 여론과 상치하는 김우중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세계로 눈을 돌린 글로벌 경영
1967년 3월, 김우중은 31세의 나이에 당시 대도섬유의 도재환 씨로부터 빌린 500만원을 자본금으로 다섯 명의 경기고 동창과 함께 대우실업을 창업한다. ‘대우’는 대도섬유의 ‘대’와 김우중의 ‘우’를 합쳐 탄생한 이름이다.
김우중은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을 지향하며 창업 원년에 58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린다. 이후로 대우실업은 승승장구하며 1972년에는 국내 수출 실적 2위에 이르렀고, 1978년에는 당당히 1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1969년에 시드니와 싱가포르에 지사를 열었는데, 당시 싱가포르의 1인 지사장은 현재 두산중공업의 윤영석 부회장이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대우실업의 해외지사는 국내기업 최초의 해외지사로 기록된다. 이때부터 김우중의 ‘세계경영’이 시작된 것이다.
부실기업을 치료하는 명의(名醫)
대우는 부실기업을 인수하면서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이에 대해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김우중은 벽돌 한 장 쌓지 않고 기업을 이루었다”는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한국기계, 대한보일러, 옥포조선소, 대한전선 가전부문 등을 인수하며 중화학공업 분야로 진출한 ‘대우’는 삼성을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에 등극한다.
이 책에는 김우중이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정상화시키는 과정이 세밀한 시선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노사분규가 극에 달했던 옥포조선소를 인수할 당시 1년 8개월 동안 현장에 머물며 노조원들의 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직원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그가 ‘두뇌만 움직이고 지시만 내리는 회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발로 뛰는 회장’의 전범임을 확인시켜준다.
미수교국가를 집중 공략
김우중은 해외시장으로 지평을 넓히며, 대한민국의 외교 수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공산권에 속해 있던 동유럽 국가들에 직접 뛰어들어 해외지사와 시장을 개척했으며, 국교 수립에도 물꼬를 텄다. 그의 글로벌 경영은 해외에서만 16만 명이라는 고용을 창출했고, 국내에도 12만가량의 고용을 창출했다.
외환위기 대처법에서 정부와 맞대결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닥치자 DJ 정부는 IMF에 구제를 신청하고, 대대적인 경제개혁에 돌입한다. 하지만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김우중은 “외환위기가 산업의 위기”일 수는 없다며 수출 증대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그는 DJ 정부의 재벌 해체 시도에 대해 “재벌이 살아야 국민경제가 산다”고 주장하여 정부와 정면으로 대치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대우의 몰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황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DJ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IMF를 기점으로 정부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미운 털’이 박힌 것은 사실이다. 이후로 김우중은 사재를 모두 헌납하고, 계열사를 대폭 축소하는 등의 자구 노력을 하지만, 그는 결국 1999년, 자신이 계획했던 ‘2000년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길고 긴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아직도 유효한 김우중의 세계경영
서울대학교 조동성 교수는 김우중의 세계경영이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경영방식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그는 5년만 더 김우중의 방식대로 국제경영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선진국 중심의 이론을 대체하여 후진국과 개도국 경영자, 기업들에게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라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또한 386 대우인의 모임인 ‘세계경영 포럼’이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길인수의 글은 객관적인 지표와 자료를 제시하며, 김우중의 세계경영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대우의 계열사들이 현재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을 근거로 김우중과 대우의 인프라와 역량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김우중은 중형이 불가피한 피고인이지만, 도전과 모험이 없는 곳에 발전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재평가를 통해 버릴 것을 버리고, 계승할 것은 계승하는 것이 대우의 세계경영 실패에서 얻을 교훈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일군 기업들이 아직도 한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