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며, 한 사람의 생명은 전 지구보다 무겁고 또 귀중하고 엄숙한 것이며,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인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의문사 유가족과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국민들에게 한줄기 빛을 주었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시한이 2002년 9월 16일로 끝나고, 시한연장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간 이견에다 정부측의 무성의까지 겹치면서 위원회 시한연장이 무산될 전망이다.
아직도 진상규명을 기다리는 많은 의문사 사건들을 남겨두고 조사 기한에 쫓겨 활동을 종결하게 된 현 시점에서 보면, 미완으로 끝난 반민특위의 좌절까지 답습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영대학 경찰행정학과 이철호 교수가 의문사와 의문사특별법,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정리한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아픈 의문사－진실은 밝혀져야 한다?(푸른세상)를 출간했다.
이철호 교수는 국가권력이 휘두른 폭력에 희생된 억울한 죽음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진실을 밝혀내 과거를 청산하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존재의의라 보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자식과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의문사 유가족과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었지만,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정하고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시한이 2002년 9월 16일로 끝남에 따라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이 중단?좌초위기에 놓여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엮은이는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되고 의문사한 영혼들에게 더 이상의 빚을 져서는 안된다. 역사청산이나 과거청산에는 시효나 기한이 있을 수 없다. 우리 현대사에서 과거청산은 수구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군사독재정권의 패거리들과 그 추종세력들이 먹으로 쓴 거짓말을 언제까지 방치하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방해책동을 용인할 것인가?”라고 올곧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 활동이 중단 없이 계속되어 권위주의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억울한 죽음들이 한 점 의혹 없이 진실이 밝혀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치유하며,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이 계속되도록 제3차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개정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해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엮은이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정부의 다른 어떤 특별기구보다 국민의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의문사특별법 제정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족이 유가족과 민주화 운동세력의 희생과 투쟁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성과물’이라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의문사의 개념과 이해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죽음’ 인 의문사의 개념과 유형을 말하고 있다. 또한 변사체가 발견되면 엄격한 절차를 통해 진상을 규명했던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의문사의 역사와 배경을 다루고 있다. 끝으로 의문사로 분류할 수 있는 42건과 의문사 사건의 접수 및 처리현황을 다루고 있다.
제2장 의문사특별법의 이해에서는 의문사특별법 제정 및 개정 경위와 의문사특별법의 이해, 의문사특별법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의문사특별법은 135일이나 계속됐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의문사진상규명 촉구 농성(1988년 10월～1989년 3월), 의문사 진상 조사 촉구를 위한 10만 여명 서명과 국회 청원(1994년 11월), 특별법 국회 청원(1998년 9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422일 동안의 국회 앞 천막농성(1998년 11월～1999년 12월 30일) 등 1여 년에 걸친 활동으로 맺은 결실이다.
이 의문사특별법은 형사법적 관점에서 범인을 추적하여 처벌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목적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더 나아가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공권력에 의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 과거 역사를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는 과거와 같은 민주 헌정 질서가 짓밟히고 국민의 기본권이 유린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고, 관련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보상하는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을 이루는 데 궁극의 목표를 두고 있다.
특별법은 설혹 미비한 점이 있더라도 법해석상 가능한 최대의 범위까지 활성화시키도록 하고 해석론적인 한계에 부딪치는 점은 법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의 집행에 있어서 미비한 점은 시행령을 보완하여 막힌 부분을 덜어내어야 할 것이다.
제3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의문사규명위원회의 조직과 활동 및 성과와 의문사진상규명과 관계기관 협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의 한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의 비협조와 거부의 실상을 다루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직의 특성으로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을 들 수 있다. 이는 공정한 조사를 위해 민간조사관과 파견수사관이 합동 조사를 행하는데 있다.
주목할 사항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997년 경찰의 검거를 피해 달아나다가 숨진 한총련 5기 간부 김준태씨 사건의 결정문을 공표하면서, 아울러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것은 문제가 있으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인권규약’을 근거로 하여 정부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개정 및 폐지를 권고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우리 나라가 가입한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및 그 제한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규정이 정부비판세력에 대해 폭넓게 오용,악용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 개정 또는 폐지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결정은 우리 사회의 예민하고 미묘한 부분을 사회 여러 세력들의 눈치봄 없이 소신껏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 규명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은 조사대상 기관들의 비협조를 들 수 있다. 보관하고 있는 자료요구에 ‘회신 지연’으로 일관하고, 의문사사건의 당시 담당 검사가 위원회의 소환에 불응하는 것을 비롯하여, 검찰과 기무사,국정원 등 공안정보기관들의 자료제출과 조사활동에 대한 거부 내지는 협조가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조사대상 국가기관의 비협조 사유를 보면, 보안상의 문제, 사건의 무관성, 해당자료 없음,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이유를 들어 비협조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위원회 활동의 한시성(限時性)을 이용하여 관련 자료의 제출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대표적인 지능적 비협조라 할 수 있다.
제4장 의문사진상규명과 과거청산에서는 반민특위와 의문사진상규명활동과 군의문사와 ‘녹화사업’을 다루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의 과제와 과거청산과 의문사특별법의 개정방향을 다루고 있다.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국민적 합의로 설치한 반민특위는 제헌헌법(制憲憲法) 하에서 국민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반민특위 와해로 친일파 청산의 실패는 이승만 정권아래서 일신의 영화를 위해 해족행위를 한 자들이 득세함으로써 국민적 정의감의 상실, 민주화의 독소로서의 작용, 만성적인 정치적 불안정, 민족의 존엄성 상실과 도피성 이민풍조 등을 낳았다. 또한, 민족심판의 무산으로 살아남은 친일파들은 생존수단으로 ‘반공주의’를 내세워 민주투사가 되고 애국자가 되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친일파 반민족적 행위자에게 도피처와 변명 구실을 제공하였다. 한편, 반공주의를 내세운 친일파들은 분단체제의 확대재생산과 사회기강을 오염시켰다.
다시 말해서,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세력들의 조직적인 방해공작으로 반민특위 와해는 새로운 국가건설과 국민화합을 해치고, 불의가 정의를 대신하는 이상한 사회풍조를 만들어 오욕과 질곡의 현대사를 만들어버렸다. 이와 같이 독재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국가폭력을 비롯한 과거청산 없이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화합은 없다.
반민특위의 와해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한시적인 활동시한은 그 괘를 같이하고 있다. 반민법의 공소시효는 그 법 공포일로부터 2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되도록 규정하고 있다(반민법 제29조). 그러나 그 기간이 2년이라는 것은 도피 등을 통해 너무도 쉽게 경과할 수 있는 것이어서 지나치게 짧은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민법이 공소시효의 기간을 짧게 규정한 것은 친일파 청산을 무산시키기 위한 수단이며, 2년으로 되어 있는 반민법의 공소시효를 이승만과 친일세력들은 그것마저도 1949년 8월 31일로 단축하여 반민특위 활동을 봉쇄하는 작태를 보여주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시한을 짧게 한시적 기구로 정한 것에도 문제가 있다. 반민특위가 그랬듯이, 반민주세력들은 의문사규명위원회가 한시적 기구인 점을 이용하여 과거청산작업에 비협조적이다. 그리고, 뒤틀린 과거사 바로잡기의 과거청산작업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반민특위 와해가 현재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에 주는 시사점은 다른 것이 없다. 보수기득권세력의 눈치봄 없이 소신껏 최선을 다하여 과감한 규명 활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에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위원회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반민특위의 와해과정과 그 후에 전개된 일련의 우리 현대사는 “과거청산 없는 역사발전은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부록으로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및 시행령과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개정안을 다루고 있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