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영웅_낡은용어, 새로운 접근
나폴레옹 - 역사를 넘어 신화로 남은 사나이
1.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
2. 신화와 반신화
3. 나폴레옹의 '부활'
4. 신화와 역사의 사잇길에서-20세기의 나폴레옹
5. 이미지
잔다르크 - 그 기적의 서사시와 기억의 여정
1. 얼룩진 기억들
2. 보나파르트가 부활시킨 '여자 나폴레옹'
3. 잔다르크의 시대, 1871~1945년까지
4. 기억의 유산, 민족주의 시대가 분비한 열정
5. 잔다르크의 세계일주
6. 새롭게 열리는 '잔다르크 파일'
엘리자베스 - 지상의 첫 번째 처녀에서 젝구의 영웅으로
1. 파란만장 공주의 여왕등극기
2. 엘리자베스 신화 ,'처녀왕'시작되다.
3. 잉글랜드의 자부심이 만들어지다. 1588~1688년까지
4. 잉글랜드성의 터전, 18~20세기
무솔리니 - 파시스트와 파르티잔 사이에서의 로망스
1. 신화, 카리스마적 매력을 뿜어내다
2. 반신화, 낭만적 환상을 그리다.
3. 기억,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다.
4. 역사, 정치와 만나다.
비스마르크 - 프리드리히와 히틀러 기억과의 전투
1. 통일 독일의 비스마르크
2. 마르틴 루터의 계승자가 되다. 1873~1885년
3.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으로 거듭나다, 1885~1933년
4. 비스마르크, 히틀러를 만나다. 1933~1950년
5. 잊혀진 영웅
2000년대 들어 학계나 문화계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탈근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특히 철학이나 문학 등 인문학과 문화·예술영역에서 근대를 넘어서려는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고, 그 결과물들도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어왔다. 역사학 분야에서도 이 같은 탈근대 논의들을 계속 이어왔으나, 역사 이론이라는 층위와 역사 인식론이라는 소통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대중들보다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성과물 역시 연구자들을 향하고 있다.
기억과 역사의 경계선이 무너지다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기억’이라는 새로운 화두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서구에서는 1980년대 초반에 등장). ‘기억’은 일반 사료와는 달리 역사성을 인정받지 못해 역사와는 다른 것으로 여겨졌다. 주관적·심리적·파편적이어서 신뢰하기 어려운 것, 기껏해야 역사가의 작업실에서 신빙성이 낮은 자료일 뿐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는 근대 역사학의 특권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회의로 인해 ‘기억’과 역사의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역사학이 갖는 방법론적 합리성과 진실성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고 기존의 역사 방법론과 이론 틀로는 현대의 다양한 요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포스트 역사학은 새로운 인식틀과 방법을 찾게 되면서 ‘기억’의 고유한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화두는 연구적인 화두로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영웅을 매개로 '기억'에 다가서다
신간 《영웅 만들기 ―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휴머니스트)은 기억’의 방향을 연구자에서 대중에게로 전환하는 최초의 시도이다. ‘기억’이라는 화두를 ‘영웅’이라는 대중적 인물을 매개 삼아 교양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역사 교양서이다. 이 책은 근대 유럽을 만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다섯 명의 국민적 영웅들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가?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그 ‘영웅’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변천하고 소멸해왔는가? 하는 ‘영웅 숭배’나 ‘영웅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누가 누구로 하여금 영웅을 왜 기억하도록 원하는가?
영웅의 초상화들
우리 근현대사는 영웅이 풍미하고 영웅을 대망하던 시대였다. 신문마다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등과 같은 연재물이 앞다투어 실리던 구한말이 그랬고,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구국의 위인으로 치켜세우던 일제말이 그랬다. 해방 후에도 민초들은 난국을 수습할 진짜 애국자를 고대하며 김구나 여운형의 연설회에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나폴레옹 전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애독하며 성장한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이순신 동상을 세종로 한복판에 세우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인물은 예전처럼 대정치가나 장군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이른바 스타들이다.
군주나 독재자가 자동적으로 그 사회의 영웅이 되고, 카리스마나 종교적 신비감으로 포장되어 사회 통합에 필요한 권위와 신화 등을 제공해왔다. 이러한 전통적인 구심점이 사라진 현대에도 사람들은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해줄 구체적인 인격적 대상을 여전히 갈구한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은 스타덤의 형태를 띤 영웅 숭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웅 ― 낡은 용어, 새로운 접근
세계사를 풍미했던 고전적 영웅들, 특히 전쟁과 민족 서사시의 주인공들이 퇴장하고 미디어 스타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오늘날, 그리고 정치적 영웅조차 스타의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 오늘날, 우리는 왜 과거의 영웅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영웅 숭배나 영웅사관을 재탕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웅은 어떻게 시대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영웅에 대한 기억이 시대에 따라 어떤 변천을 겪어왔는가를 탐구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웅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웅 ‘숭배’나 영웅 ‘담론’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웅을 만들고 그들의 초상을 새롭게 덧칠해온 각 시대의 서로 다른 욕망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 고, 그럼으로써 그 시대로부터 객관적인 거리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콜럼버스를 기독교 복음의 전파자요 근대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탐험가로 우러르던 식민주의적, 서구중심주의적 욕망은 근래 들어 그를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홀로코스트를 초래한 정복자로 보는 탈식민주의적 이성과 갈등하고 있다. 영웅의 초상화에 일어나는 변화는 바로 우리 자화상의 변천이기도 하다.
국민적 영웅을 둘러싸고 벌어진 '기억의 전투' 장면
근대, 국민적 기억의 창안과 보존
한 국민이 과거에 대해 공유하는 집단 기억은 자신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비전을 비추어 보는 하나의 거울이다. 때문에 그것은 국민적 정체성의 형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일반 사람의 경우에 그러한 기억은 역사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해석보다는 과거의 위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십상이며, 또 허구이건 진실이건 간에 대중의 기억 자체가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 국민이 역사적 영웅들에 대해 내면화하고 있는 기억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반성하는 작업은 역사를 재인식하는 첫걸음이자 지름길일 수 있다. 《영웅 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은 오래 전에 그리고 훨씬 더 격렬하게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유럽 국가들이 국민적 영웅을 둘러싸고 벌어진 그 ‘기억의 전투’ 현장들을 돌아보고 있다. 이 현장은 매우 흥미롭게 전개될 뿐만 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역사가들이 벌이는 과거와의 전투
특히 이 시기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경우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민족주의―제국주의―전체주의로 이어지기에 국민적 정체성의 형성에 아주 결정적인 시기였으며, 그러한 정체성의 건설 과정에서 어떤 인물들을 ‘국민적 팡테옹’이라는 ‘기억의 신전’에 모실 것이며 또 그들의 어떤 측면을 어떻게 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늘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쟁점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영웅 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위의 네 나라에서 근현대에 걸쳐 일어난 영웅화 현상의 양상과 메커니즘을 그 시대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살피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의 어떤 인물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영웅으로 탄생하고 신화화되었으며, 그러한 기억이 지배 권력에 의해 또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에 속에서 어떻게 왜곡·조작되고 또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영웅들에 대한 기억이 생성되고 변형되고 전승되는 일련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의 영웅들에 대한 기억이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한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수행한 역할을 분석하고 그것의 긍정적·부정적 기능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러한 집단 기억이 장차 국가의 미래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보존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짚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코드로만 수렴되는 근대적 영웅들의 삶
영웅의 재발견
근대에 재발견된 영웅은 민족의 서사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민족이든 영웅을 갖고 있으며, 영웅을 갖지 못한 민족은 역사에서 소멸했다. 그것은 유독 그 민족에게 뛰어난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이 공동의 기억을 간직하는 데 실패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사조의 유행 속에 ‘기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1980년대는 또한 탈민족주의 사조가 확산된 시기였으며, 이는 근대의 영웅신화에 비판적 성찰을 가하는 데 적절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민족을 초역사적인 실체가 아니라 근대 특유의 현상이자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 탈민족주의는 민족의 과거에 관한 ‘자명한’ 기억들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고 이를 탈신비화하는 것을 주요과제로 했기 때문이다. 유구한 민족전통으로 생각되던 왕실의 제의, 국민적 축제, 민속의상 등등이 근대 민족주의의 열풍 속에서 발명, 가공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영웅은 '미디어'다
역사학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국민국가를 주체로 하는 이야기이자 그 자체 국민적 관심사로 재탄생했다. 각축하는 민족들의 이야기로서의 근대사라는 것 자체가 민족주의의 작품이었다. 이렇듯 왕이 아니라 국민국가가 역사의 새로운 주체로 등장하게 되자 역사적 기억은 지금까지처럼 지배자의 명령이나 정당성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전근대시대에 영웅은 무엇보다 범인을 초월하는 꿈같은 존재이지만 근대의 영웅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의 민족인 ‘우리’라는 범주로 묶어주는 상상의 원천이다. 이렇게 영웅은 구성원 전부를 상하·수평관계 속에서 매개하고 연결시킨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미디어(매체)였고 다시 민족 정체성이라는 숨은 신이 되어 구성원의 내면을 조종해나갔다. 근대적인 국민 영웅은 극단적인 경우 별다른 뛰어난 자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가나 민족에 대한 충성심만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