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과학서 그리고 미생물에 대한 무관심과 오해를 넘어서
“사스의 진범으로 거의 굳어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이 동물이나 식물, 박테리아와는 달리 DNA(디옥시리보핵산)가 아니라 RNA(리보핵산)이다. 유전자는 한 가닥으로 되어 있으며 유전자재조합이 잘 일어나 변이 가능성이 높다. 바이러스 입자는 공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입자 지름은 100nm(나노미터) 가량이다.”
위의 글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정체에 대하여 얼마 전 모 신문의 ‘의료/건강’ 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관한 기사임에도 아무런 심각함도, 절박함도 없이 무심하게 읽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DNA, RNA, 유전자재조합, 바이러스 등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말들인데도 말이다. 비록 이것들의 작동원리와 생존방식을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지만 우리는 그 대강조차도 아주 자연스럽게 망각한다. 교육시스템의 문제일까, 부실한 기억력을 가진 우리 탓일까? 물론 여러 요인이 얽혀서 작용하겠지만, 물리,화학,생물 등의 골치 아픈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과학에 대한 우리들의 본능적인 거부감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는 일차적으로 불친절한 과학교육, 과학서적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드디어 완료된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 50년의 역사는 2003년 대한민국에서 이 달의 카드 결제를 고민하며 사는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과학은 그리고 대중과학서는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 걸까?
대중과학서가 갖추어야 할 미덕은 대중으로 하여금 과학을 대상화하지 않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인도하는 친절함일 것이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지식의 성채는 경외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복잡한 사회와 신비로운 자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연과 과학 또는 과학서에 대한 이 같은 오해는 미생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미생물을 지저분하고 징그러운 벌레쯤으로만 여기는 건 아닐까?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비밀을 몸소 증거하는 미생물의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얻는 과학적 이해의 즐거움을 외면한 채 말이다.
과학적 이해는 인생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위대한 예술이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귀중하고 생산적이며 즐거운 문화적 체험이다. 과학은 인간이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영역들을 비추어 그것들을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고찰하게끔 도와준다. 이 책이 의도하는 바 또한 그러하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