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대 위에서의 앞놀이
2. 하늘에서의 서곡
3. 밤
4. 성문 앞
5. 서재 1
6. 서재 2
7. 라이프치히의 아우어바흐 지하술집
8. 마녀의 부엌
9. 길거리
10. 저녁
11. 산책길
12. 이웃 여인의 집
13. 길거리
14. 정원
15. 정자
16. 숲과 동굴
17. 그레트헨의 방
18. 마르테의 정원
19. 우물가에서
20. 성벽 안쪽 골목
21. 밤
22. 성당
23. 발푸르기스의 밤
24. 발푸르기시의 밤의 꿈
25. 흐린 날, 벌판
26. 밤, 광활한 벌판
27. 감옥
독일 문학의 고전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일 작품 하나를 택하라면, 아마도 거개의 독자들은 독일의 문호 괴테가 평생을 걸쳐 집요하게 작업한 끝에 완성한 「파우스트」를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은, 이 작품이 세계의 비의(秘義)를 꿰뚫어보는 절정의 정신이 창조한 방대한 대우주의 영가(靈歌)이자 시극(詩劇)이면서, 그 중심에 서있는 한 인간의 방황과 모험, 그리고 구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해 들어간 대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세의 전설적 존재를 재현하여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 아래, 세계와 삶의 궁극을 방황하며 죄를 통해 천상의 주제에 이르는 장대한 파우스트의 도정은, 선과 악, 성과 속, 천상과 지상, 유한성과 무한성, 밝음과 어둠, 우연과 필연, 개체와 우주, 사랑과 회한의 이분법적 경계를 가로질러 인류 최고의 가치를 탐색하는 문학적 과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숱한 연구가, 사상가, 예술가들의 존경과 탐구의 대상이 되어온 이 세계 문학의 정상은, 그간 국내 괴테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그 신비한 속살을 일부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우리 나라 괴테 문학 수용자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1965년 출간된 강두식 교수의 「파우스트」번역본을 필두로 대략 35년 동안 20여종의 다양한 번역본이 출몰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와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실례인 것이다. 평균 2년마다 번역본이 나온 셈이니, 파우스트에 대한 한국 독문학계의 관심과 애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러나 강 교수의 번역 이후에 나온 번역본들은 한글 세대의 독자들을 위해 문체의 전환을 모색하였던가, 앞에 나온 번역본의 부분적인 오역을 바로 잡았다는 측면에서는 응당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나, <왜 새로운 번역이 필요했는가>라는 신역(新譯)의 당위성에 대한 발본적인 성찰에서부터 촉발된 작업은 아니란 차원에서는 또한 비판의 과녁이 돼야 한다는 것이 최 교수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번역은 <다시쓰기>도 아니고 <옮겨 쓰기>도 아닌, <여기 지금>과 동시에 호흡하며 빚어내는 <같이 쓰기>의 지난한 산물이 아니던가. 최 교수는 잘못된 번역은 다른 역자의 보다 나은 번역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해악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 의식에서 돛을 올린 최 교수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중요성과 의미를 갖는다. 먼저, 기존의 번역본들과 비견해 첨예하게 갈라는 지점이 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파우스트란 인물의 생물학적 나이에 대한 이견이다. 지금가지 대부분의 괴테 전문가들이 파우스트의 나이를 50세에서 60세 이상의 노(老)교수라는 입각점에서 텍스트를 독해해 왔다면, 최 교수는 "파우스트 나이는 30세이다"라고 주장하는 독일의 학자 레젠회프트의 참신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 번역, 즉 <같이 쓰기>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파우스트는 당시 제도권내의 모든 학문을 섭렵한 대석학으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나, 기존의 관습과 체계, 그리고 진부한 일상을 부정하고 삶과 세계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가는 <미완성>의 인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의 나이는 지천명이나 불혹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삼십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최 교수는 번역자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으나, 기존의 번역본들이 <밤> 장면의 첫 독백을 나이든 교수가 내뱉는 삶에 대한 한탄과 회의의 어투로 이해하여 예외 없이 감탄사 <Ach!>를 <아!>, 혹은 <아아!>로 번역하고 있는 대목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현실계의 질곡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파우스트의 가열한 의지와 분노의 극적인 감정 폭발과 세상의 이치를 궁구(窮究)하는 자의 처절한 절규와 항변으로 해석, <악!>으로 번역하고 있다. 고색창연한 수사와 진부한 번역체로 축 늘어졌던 기존의 번역본과는 달리, 텍스트에 아연 활기와 긴장이 스며드는 순간이라 하겠다. 두 번째로, 최 교수의 파우스트 번역 작업에는 20세기 정신 과학의 꽃이라는 해석학의 성과를 바탕에 깔고 있다. 파우스트라는 텍스트의 문자를 있는 그대로 읽고 독해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이를 2000년대 한국 땅에 존재하는 ||^최두환의 눈||^으로 해석하여 풀어내려 했다는 뜻이다. 그 해석의 열쇠는 바로 <판소리>라는 한국적 리듬의 신명나는 박동이다. 기존의 번역본이 파우스트가 드라마이기 앞서 리듬이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시적 텍스트라는 측면을 흘겨보았다면, 역자는 파우스트에서 반복되는 율격상의 주요 패턴인 <강약약강>의 리듬구조를 우리 판소리의 <밀고, 달고, 맺고, 푼다>는 이른바 <초경결해(超景結解)>의 그릇에 담아 신명나게 풀어내고 잇는 것이다. 최 교수가 번역한 텍스트가 대화의 맛깔스런 묘미를 살린 사뿐한 걸음으로 경쾌하게 다가오면서도, 자못 묵직한 뒷맛과 여운의 자락을 남기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을 터이다. 세계와 존재에 대한 도저한 문제 의식을 판소리 특유의 능청과 의뭉, 반어와 익살, 풍자와 해학으로 걸러낸 역자 특유의 <걸쭉한 입심>은 단연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독일어 텍스트와 우리 판소리 장단이 서로 스미고 자이면서 빚어내는 공명(共鳴)!
출판사의 상업주의적 논리와 역자의 자실 부족으로 인해 악역·오역·졸속 번역이 양산되는 요즈음, 대학에서 20여년 동안 괴테와 「파우스트」연구에 혼을 바쳐온 최 교수가 새롭게 엮어 낸 「파우스트」(시와진실, 2000년)는 번역이란 <장미밭에서 춤추기> 같은 고통 속에 지적 쾌락임을 온몸으로 구현한 한 깨어 있는 지식인의 노작이자, 누대(累代)의 번역 작업들이 남긴 장·단처를 오지랖 넓은 품으로 끌어안아 재 탄생시킨 파우스트 번역본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책의 주요 길목 길목마다 끼어 넣은 다채로운 삽화들은 책을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책을 <보는> 솔솔한 재미를 덤으로 제공해 준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