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근대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현대 사회의 원형이기도 한 그 시대는 중세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으며 중세를 허물어뜨린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근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현대 세계에 대한 기원을 알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사는 현대 세계는 근대의 자식이다. 근대의 자궁에서 현대가 탄생했고 근대가 제공한 자양분으로 오늘날 우리가 존재한다. 긍정적인 관념(자유 평등 박애 같은 인류의 공동선)과 부정적인 유산(개인별 · 국가별 빈부격차의 문제, 민족 · 인종간의 갈등)도 이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넘어왔다. 이 점이 우리가 근대 세계를 탐구해야 할 이유이자 이 책이 씌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근대 세계는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 혁명’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자본’으로 대표된다. 자본은 시기마다 모습을 달리하면서 영향력을 넓혀갔고 점차 세계를 ‘시장화’하였다. 그것의 완성태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는 고도화한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기 위한 체계이며 원료공급지로서, 판매시장으로서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의 본질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보다 더 정교하게, 더 강하게, 더 크게 자기 몸통을 만들었고 일국의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바로 이 점이 근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다. 근대 세계의 원형은 중세 후기 사회의 모순에서 잉태되었다. 그리고 몇 가지 정치적 · 사회적 사건을 통해 기존 질서를 수호하려는 세력과 신질서를 내세우는 세력간에 패배와 승리가 반복되면서 ‘근대의 특징’이 싹트게 되었고, 새로운 세력이 점차 주도권을 장악해나가면서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 혁명’을 통해 형성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중세 후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제국주의가 완성된 20세기 초반까지 400여년의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살핀 글이다. ‘근대’라는 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성 · 변화 · 발전 그리고 해체되는지 독자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잘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세계사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현재 도서 시장에서 근대의 역사를 따로 떼어내 단행본으로 펴낸 경우는 드물다. 전집류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 또는 전체 중에 한 부분으로 편집해서 나온 책들은 많이 볼 수 있지만 독립된 책으로, 특히 청소년용으로 나온 예는 그리 흔치 않아 보인다. 이 점이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책이다. 보통 학습용 역사책이 연대기와 사실만을 강조하는데 비해 이 책은 사건을 살피면서도 에피소드를 곁들였고 충분한 사례에 재미와 풍자를 더함으로써 딱딱함을 덜어내려 힘썼다.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특징이다. 요즘 ‘논술’에 관한 문제로 말들이 많다. 시비를 떠나, 논술에서 교사나 학생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어렵게 느끼는 점이 바로 관점(觀点)이라고 한다. 사실을 가르치고 논술의 기법을 알려줄 순 있어도 어떤 입장에서 엮어내고 정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 임영태는 역사의 발전에 대한 믿음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피억압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온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거기에 함몰되지도 않는다. 관점의 일관성과 적당한 거리두기, 세 번째 특징이다. 총론적 성격의 글(제1권, 프롤로그_근대의 문을 열기 위한 대장정)과 정리의 글(제3권, 에필로그_제국주의 시대와 세계 전쟁의 서막) 두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열일곱 편의 글들은 각 사건 또는 인물을 다룬 것으로 흐름상 연대순으로 배치했지만, 각 편마다 독립적 성격을 띠므로 한 편씩 읽어도 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사건 발생의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밝히려 애를 썼는데 이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사건도 ‘근대’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일련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일러주기 위함이다. 개별 사건들을 전체적인 시야로 바라보려 했다는 점이 이 책의 네 번째 특징이다.
교회의 성(聖)과 군주의 속(俗)의 속성이 묘하게 결합된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이민족 · 이교도에 대한 침략전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선진 문물을 접한 유럽 사회에 충격과 균열의 조짐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십자군 전쟁의 후과는 ‘하늘과 이웃’만 쳐다보고 살았던 게르만식의 공동체적 · 지방적인 중세 유럽 사회에 ‘좋은 것’과 ‘귀한 것’, ‘편한 것’도 필요하다는 관념을 싹트게 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야를 좀더 먼 세계로 향하도록 만들었고, 저 너머에 자기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했다. 사회는 천천히 바뀌어갔다. 아주 느린 속도였지만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이국에서 들여온 물건들은 필수품이었으므로 그것을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특히 귀족들이 더 그랬다. 영주들은 농노에게 현물 대신 화폐를 요구했고, 농노들은 물건을 팔아 화폐를 마련해야 했다. 자연히 시장이 활발해졌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시장이 커지면서 전문적인 환전업자가 나타났으며 무역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그 규모도 커지기 시작했다. 이 무역업자들은 귀족으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동맹’을 만들거나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다. 농촌사람들은 소문을 통해 도시에 대해 듣고 있었고, 차츰 정보도 쌓여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도시에는 ‘자유가 있다’는 소문이 온 유럽 사회에 떠돌게 되었다. 사람들은 표현하고 싶어 했다. 중세에는 교황이나 황제가 한마디 하면 그 의미를 새기느라 묵상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후기에 접어들어 새로운 문물을 접한 소수의 선각자들은 문학으로, 그림으로, 조각 등으로 자기의 내면세계를 밖으로 드러냈다. 르네상스 시대이다. 이 ‘표현’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작되어 중서부 유럽을 에돌아 한 그룹은 북해에 인접한 지역으로, 다른 한 그룹은 서쪽으로 나아가 스페인에 이르렀다. 남미에서 은광을 개발한 스페인이 대량의 은괴를 유럽으로 가져왔다. 그 결과 투르크와 교역을 독점하던 이탈리아 반도 도시국가들의 힘이 현저히 떨어졌고 스페인이 유럽의 중심 국가가 되었다. 절대왕정이 이 무렵 형성되었으며, 교역도 북해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해갔다. 그리고 중세를 이끌던 교황의 위세도 예전 같지 않았다. 새로운 사조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영국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등은 이 시대를 연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신흥계급과 낡은 제도에 안존해온 기득권층의 대립이었다. 영국은 그 나름의 특성대로 계급간의 화해를 통해 근대적 제도를 안착시켰던 반면, 프랑스는 계급간의 갈등을 드러내면서 혁명을 통해 과거의 유습을 털어내려 애썼다. 식민지였던 미국은 본국 영국의 지나친 과세에 항거하며 독립을 쟁취했고, 국가 건설에서 각 이해집단의 요구를 절충하여 오늘날 아메리카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타협으로 이룬 나라였다. 사람이든 국가든 하나의 제도를 쟁취하면 이전의 수고는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이들 세 나라는 근대 제도를 갖추는 순간 야수의 속성을 버리지 못했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새로운 독재자(나폴레옹)가 출현하여 제 맘대로 유럽의 국경을 만들었고, 미국도 영토 확장을 위해 원주민을 축출하고 멕시코 침략전쟁에 나섰다. 영국은 해외로 눈을 돌려 많은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러시아 등도 이에 동참하였고 신흥 강국 프로이센도 서서히 힘을 비축해갔다. 중부 유럽에는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여전히 세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로운 원료 공급기지로서 식민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에서 강제노역으로 원주민들이 줄어들자 이들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려 노예무역을 하게 된다. 이른바 대체 노동력인 셈이다. 이 노예무역은 유럽 자본가들에게는 엄청난 돈을 벌어다주었으나 아프리카 대륙은 황폐해졌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 ‘반인륜적 행위’는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노예무역은 근대 자본가계급 탄생에 큰 역할을 하였다. 영국은 에너지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중세 후기부터 지속되어온 삼림자원 고갈은 하루라도 빨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석탄 채굴에 필요한 도구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또 인도에서 면직물을 수입 · 가공 · 판매하기 위해서는 방직기계의 발명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요인들이 모여 맨 먼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유럽대륙과 아메리카에서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과학의 발달로 이어지게 된다. 산업혁명은 근대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이다. 자본이 축적되고 국가가 부강해짐에도 불구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가지지 못했다. 기존 사회가 해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 축에 편입되었고 그들의 유일한 재산은 그 자신의 몸뚱어리, 즉 노동력뿐이었다. 그나마 기계의 등장으로 노동력 판매도 쉽지 않고 갈수록 노동환경이 열악해지자 이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하게 되는데,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된 저항운동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계급적 저항 외에 각 민족이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유럽 내의 소수민족들이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남미에서도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대로 반동세력들도 힘을 강화하는데,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중심이 되어 ‘신성동맹’이 결성되고 이들은 유럽 각 민족의 저항을 철저하게 진압한다. 다만 이미 기력을 다한 스페인은 남미의 독립을 막지 못한다. 한편 영국은 인도를 완전히 자국 세력 안으로 편입하고 프랑스와 연합하여 중국과 아편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 열강에 의해 중국이 침탈당한다. 그다지 별 볼일 없었던 곳(?)이라 여겼던 아프리카마저 동서 횡단로가 개척되자 열강들이 벌떼같이 뛰어들어 불과 20년도 채 안 되어 자기들 마음대로 분할해 버렸다. 이제 식민지는 육지만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무인도도, 대양도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에 포함되었다. 19세기 말 태평양도 열강에 의해 분할이 완료되었다. 1860년대 들어 신흥강국 미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흔히 남북전쟁이라 부르는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신천지를 찾아 유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 중심의 북부 산업지역과 노예노동에 의존한 남부 농업지역의 갈등이었다. 통일 시장과 안정된 노동력 수급을 원했던 북부는 연방정부가 필요했고, 남부는 독립 초기의 지방정부 시절로 돌아가고자 했다. 남북간의 대립은 북부 산업자본가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은 연방국가로 공고히 설 수 있게 되었다. 국내문제를 정리한 미국은 왕성한 에너지로 이제는 낡아빠진 나라 스페인 식민지들을 모조리 빼앗았다. 미국 군함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열 수밖에 없었던 일본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더니 제법 산업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옛 모습을 정리한 일본은 프로이센 발전모델을 답습하면서 효과적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으로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제일 가까이에 있는 나라 조선이 일본에게 당한 최초의 국가였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