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와 전학을 통한 통과 의례 이사나 전학과 같은 환경 변화는 아이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다. 심한 경우에는 자폐증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 만큼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두렵다. 이 작품은 로베르트라는 한 아이가 이사와 전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환경 변화를 보기 드물게 꼼꼼히 그려낸 작품이다. 로베르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부모의 사정에 따라 이사와 전학을 해야 했다. 그래서 더욱 옛날 집과 예전 친구들이 그립다. 무조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새 친구도 사귀어야만 했다. 하지만 반 친구들은 모두 짝이 있는 것 같고 자기만 외톨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로베르트는 혼자 놀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벽지를 바라보면서 온갖 상상을 해 보았다. 상상 속 친구를 사귀는 거나 인형에게 친구처럼 말을 거는 것은 아이들에게 흔한 일이다. 로베르트도 자기와 똑닮은 친구 트르베로를 만들었다.
트르베로는 자기를 전적으로 이해해 주는 친구이자 분신이다. 그러니 트르베로와 놀 때는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숙제도 대신 해 주고 함께 로켓 놀이도 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이 놀리면 위로도 해 준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모든 게 쉽지가 않다. 반에서 힘이 가장 센 아이 프랑크는 아무 이유 없이 로베르트를 괴롭힌다. 친구하고 싶었던 시몬네마저 아이들이 로베르트를 비웃을 때 같이 비웃고 만다. 새로운 학급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로베르트는 더욱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트르베로만이 진정한 친구라고 여긴다. 하지만 프랑크와 티격태격하면서 울기도 하고, 시몬네와 갈등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로베르트는 트르베로와의 둘만의 세계에서 점점 현실 세계로 발을 옮겨 놓는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로베르트의 진심이 시몬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결국 로베르트는 상상 속 친구를 떠나 보내고 현실의 친구 시몬네를 맞아들인다.
친구를 사귀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쉽지가 않다. 친구를 위해 마음 속 자리를 마련해 두어야 하고, 마음을 열어 친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조금은 싸우면서 화해도 하고 문제를 같이 해결하기도 하면서 친해지는 게 친구 사이이다. 그런데 로베르트는 트르베로라는 상상 속 친구와의 안정적인 상태를 즐기기만 했다. 결국 상상 속 친구는 그저 상상에만 머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로베르트는 현실의 친구를 선택한다. 로베르트는 이사와 전학, 새 친구 사귀기를 통해 일종의 통과의례를 무사히 치렀다. 어린 아이에게 만만치 않은 문제들을 거뜬히 이겨 낸 것이다.
깔끔한 문체에 어울리는 정갈한 그림 파울 마어는 다양한 수상 경력이 말해 주듯이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공인받은 작가이다. 그 만큼 마어의 문체는 깔끔하고 단정하다. 어린 친구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맞출 줄 알고,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부연하지 않고도 아이의 마음을 정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이다. 동화로 이야기를 풀었지만 문장 하나 하나는 시어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마어는 짧은 문장과 길지 않은 분량으로도 한 아이가 이사와 전학을 거치면서 치르는 진통과 친구 사귀기의 어려움을 아주 잘 표현해냈다. 프란츠 비트캄프 역시 아이들을 위한 그림이 뭔지, 텍스트에 어울리는 그림이 어떤 것이지 명확하게 아는 그림 작가이다. 텍스트가 깔끔한 만큼 그림도 생략미가 돋보인다. 몇 개의 선과 점으로 표현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실제 살아 있는 사람처럼 감정이 잘 담겨 있다. 언뜻 보면 아이의 표정이 비슷비슷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당황한 표정, 화가 난 표정, 실망한 표정 들이 쉽게 구분된다. 부드러운 브라운 톤의 색감이 작품 전반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