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같음 : 우리는 같다. 단지 내겐 장애가 있을 뿐 장차현실의 세상 보기 2 싱글 남의 속도 모르고 야, 이 오줌싸개야! 네 자매 팬티 쟁탈 사건 등과 가슴 사이 그저 가만히 만원 버스 길치, 운전면허를 따다 안녕, 키다리 아저씨 나의 결혼 이야기 내 인생의 프로젝트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떼부’에서 ‘호호아줌마’까지
2부 다름 :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차이가 차별이 되는 까닭은 장차현실의 세상 보기 3 촬영 목욕탕에 안 가는 아이 기적은 없다 대단한 딸 천덕꾸러기 내 동생 나 홀로 그 여름의 소나기 국문과를 선택한 이유 파란만장 직장 생활기 명절 풍경 바쁘거나 아픈 여자 찬아, 엉금엉금 기어서 갈까? 나는 평범한 장애인이고 싶다
3부 소통 : 우리가 함께 가는 길. 조금 늦어도 기다려 줄래? 장차현실의 세상 보기 4 친절 잘 웃는 아이 대필 편지 바보 아랫집 기만이 장애가 준 선물 기꺼이 쓴 약을 건네준 여자들 넌 커서 뭐가 될래? 도움과 동정의 차이 여기서부터 쭈욱 바다예요 덤으로 얻는 기쁨 우린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
4부 시선 : 내 눈에 비친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줄게 장차현실의 세상 보기 5 모텔 우리들의 동수 아저씨 - 핑크 팰리스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으리라 -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누가 거짓인가 오아시스 완벽한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만나다 프리다 그대로 놔두면 아이들은 누구나 시인이다 - 백창우의 살아 있는 노래들 어디에나 있는 ‘조제’들을 위해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 - 아기 부처 장애인 담론에 장애인은 없다 바퀴 달린 사나이 박대운
장차현실의 세상 보기 6- 칠부바지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다리를 잘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일본 영화가 잔잔한 감동을 주며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장애여성 ‘조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한 장면. 남주인공의 잘난 여대생 애인이 초라한 장애여성에게 애인을 빼앗긴 것이 자존심 상해 조제를 찾아온다. 그리고 조제에게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러워”라고 한다. 그러자 조제는 담담하게 말한다. “정말 그러니?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 넓은 운동장에 나가서 친구들과 같이 뛰놀고 싶지만 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홀로 교실을 지켜야 했던 저자에게 “넌 좋겠다. 체육을 안 해도 돼서”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던 친구들. 장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소외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의 그런 투정에 조제처럼 “그럼 다리를 잘라”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얼마나 야속하고 속상했는지……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라고 한다. 장애인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장애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장애여성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오늘도 난, 외출한다》는 인터넷 장애인 뉴스인 <에이블뉴스>에서 ‘백발마녀’라는 필명으로 장애인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필력을 보여주었던 김효진이 ‘다름과 같음 그리고 소통’이라는 주제로 어린 시절부터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지체장애여성으로 살아온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할아버지 등에 업혀서 학교를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낮술을 드시고 손녀딸을 잊어버린 날은 모두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하염없이 할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결국 교실에서 오줌을 싸버린 날, 남몰래 좋아했던 반장에게 “야, 이 오줌싸개야!”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여덟 살의 나이에 기다림부터 배워야 했으며 자라서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채용해줄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순간까지, 그녀의 기다림은 언제나 멀고도 길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옷 보따리에 이상하게 자신에게 맞는 옷은 늘 없었다. 몸도 성치 않은 애가 예쁜 옷은 입어서 뭘 하겠냐는 엄마와 옆집 아줌마의 대화를 엿듣고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어린 소녀, 혼자 상상하는 로맨스에서 늘 상대방을 보내주는 것으로 결말을 맺으며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평생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젊은 시절. 그리고 마흔이 넘는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아이’라는 인생의 기쁨을 알게 되었지만 ‘자기 몸도 성치 않으면서 무슨 아이를 데리고 밖에 돌아다니냐’는 사회의 여전한 편견. 불편한 다리에 대해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물음에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 대답하기 곤욕스럽기도 하고 혹시 잘못 대답하면 ‘몸이 불편하니 마음도 삐뚤어졌다’는 비난이 돌아올까 봐 조심스럽고 그래서 저자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해본 말은 “괜찮아요” 였다고 한다. 쓸모없는 생명은 없다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 인식을 기다림과 인내로 버텨온 그녀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장애여성들의 현실이다. 이제는 ‘이런 일도 있었지’라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담담하게 풀어나가지만 글 속에 숨겨져 있는 힘겨운 시간들이 독자들의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오늘도 난, 외출한다》는 있는 그대로의 장애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여성에 대한 생각을 재점검하게 한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차이를 가진 한 인간에게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밝히는 것은 그저 고발, 폭로나 한풀이가 아니다. 저자의 이런 작업은 장애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어떤 세상이며,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서로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사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이유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장애여성은 불쌍하거나 특별할 것이라는 사회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보인다. 즉 장애여성이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모습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장애여성도 여성임을 밝힌다. 동시에 장애여성이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장애여성의 차이를 드러내고 장애여성이라는 존재와 삶의 긍정성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도 꿈을 꾼다고 한다. 중도에 실명한 사람이라면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꿈을 꿀 수 있겠다 싶지만 선천적으로 실명한 사람은? 그 사람들은 '소리'로 꿈을 꾸고 때론 냄새와 촉각도 곁들여진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의 보지 못하는 능력만 부각해서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 짓게 되는 것이 바로 비장애인의 시각이다. 하지만 그들은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꿈꾸는 사람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여성들도 꿈을 꾸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미니스커트도 입고 싶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들이도 가고 싶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이렇게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욕구를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녀들의 욕구를 무시하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한다. 최근 공공장소에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이 설치되고 있지만 남녀 구분을 두지 않고 공용으로 했다는 점은 여전히 사회가 장애여성을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장애여성이 비장애인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을 사실이다. 그래서 비장애인에 비해서 더 많은 배려와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차별이 되고 장애인은 비정상적인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외눈박이들만 사는 사회에서는 두눈박이가 비정상이고, 다리가 하나뿐인 사회에서는 다리가 두 개 있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즉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상대적인 것이다.
그녀들의 당당한 외출이 시작된다
더 이상 아버지와 남편의 인형으로 살지 않겠다고 가출한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저자도 둥지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문턱을 넘어야 했다. 더 이상 부모, 형제의 보호 속에서만 안주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장애여성을 없는 존재처럼 취급하며 세상에서 격리하려는 사회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렇게 처음 외출을 시도하던 날 넘어져서 턱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도 무릎과 팔, 다리 등 어느 한 군데 몸 성할 날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곧 삶의 자유를 의미한다. 여자와 그릇은 내돌리면 깨진다고 ‘감금’하던 시대가 지났건만 여전히 장애여성들은 자발적으로 혹은 억압적으로 갇혀 살고 있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자 최소한의 권리에 해당하는 ‘외출’이 장애여성에게는 여전히 일생 동안 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주어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 책의 제목인 《오늘도 난, 외출한다》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외출’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장애여성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자 했다. 지난 3월 여성평등 디딤돌상을 수상한 이선희 씨는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장애여성 누드 사진을 촬영하여 장애여성은 결코 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여성이라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우리 시대 인권의 완성이자 마침표가 될 장애여성, 그녀들의 당당한 외출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함께 가는 길. 조금 늦어도 기다려 줄래?
세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저자는 요즘들어 새삼 자신이 장애여성이라는 가슴 사실을 가슴 저리게 깨닫게 된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찬이를 보고 ‘커서 엄마 많이 도와드려야 한다!’라는 말을 할 때면 말이다. 언뜻 듣기에는 아무런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듯한 이 말에는 사실 장애가 있는 엄마는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부족함이 있으니 어린 아들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그 부족함을 해결하기 바란다는 뜻이 들어 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또 누구도 온전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며, 알게 모르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왜 유독 장애인들만 늘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존재로 여기는 것일까? 그런 인식의 저변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완전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지는 않은가? 장애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는 그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도움만 주면 되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볼 것도 없이 일방적인 도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저자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도움일 뿐 동정 받아야 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먼저 헤아리고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장애인 담론에 장애인은 없다
저자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여성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최근 장애인에 대한 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는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장애인의 이야기가 자칫 장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당신도 예비 장애인’이기에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는 말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완전히 다른 망가진 사람이라는 구별이 깔려 있는데다 자신도 장애인이 될지 모르니 미리 자선과 봉사를 하라는 건 일종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은 비정상적이고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 비장애인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이분법이 전제되어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서만 장애 문제에 접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한두 사람의 성공한 장애인을 집중 부각함으로써 비장애인에게는 평소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 문제를 도외시해온 것에 대한 면죄부를 줌과 동시에 장애인에게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출판계에서도 장애를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되어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시면서 ‘그래,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장애여성에게 돌아오는 것은 ‘너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을 거야’라는 울림 없는 말뿐이다. 혹시 딸이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없는 살림에도 피아노와 미술을 배우게 하고, 꼭 1등을 해야 한다며 ‘대단한 딸’이 되기를 바라던 저자의 엄마처럼 세상 사람들은 장애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장애인 개개인이 넘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여성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성공한 장애인의 불굴의 삶이나 무용담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따르고 싶고 배우고 싶은 평범한 장애인들의 삶이다. 그리고 사회 편견에서 벗어나 장애인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어, 어중되게 비장애인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답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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