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금 백만 달러 사나이의 유머 20세기 최대의 필화사건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사건을 꼽지 않을까 싶다. 1988년 발표된 《악마의 시》는 선과 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현란한 말재간과 해박한 지식으로 경쾌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서도 이슬람교를 심하게 모독했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가 루시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까지 했던 문제작이다. 루시디는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길고도 긴 도피 생활에 들어가지만 책을 진열한 영미 서점들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이 작품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자가 피살당하기도 하는 등 루시디가 사면받기까지 약 십 년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은 간단없이 일어났다. 《하룬과 이야기 바다》는 살만 루시디가 이렇듯 한참 도피 중일 때 쓰여진 작품이다. 《악마의 시》를 읽고 종교적 모독을 느끼는 사람들은 소설의 속성인 허구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꼬집은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자신의 작품을 허구와 유머로 얽힌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였을 살만 루시디는 창작과 검열에 대한 유머러스한 상징들을 바로 이 작품 《하룬과 이야기 바다》에 모두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상상력이 날뛰는 문학 천재의 명작 알파벳이라는 나라에 하룬 칼리파라는 소년이 살고 있다. 소년은 유명한 이야기꾼 라시드 칼리파의 아들이다. 어느 날 하룬은 어머니가 집을 나갔는데도 측은한 표정만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부아가 나서 “사실도 아닌 이야기가 무슨 쓸모가 있어요?” 하고 말한다. 평생을 이야기꾼으로만 살아온 라시드 칼리파에게 그 말은 너무 치명적이었을까? ‘공상의 바다’ 라시드는 아들의 그 말을 듣고 그만 이야기 능력을 잃고 만다. 죄책감을 느끼던 하룬은 ‘물의 정령’을 만나고서야 아버지가 지어낸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이야기 물’이니 ‘물의 정령’이니 하는 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자신이 직접 아버지에게 이야기 능력을 되찾아 주기로 결심하고 물의 정령을 따라 ‘이야기 바다’가 있는 수다 시로 향한다. 문제작 《악마의 시》에서 살만 루시디가 선과 악의 대립 양상이 그다지 간단치도 않고 분명하지도 않음을 보여주었듯이 이 작품에서도 역시 이야기를 옹호하는 세력과 이야기를 말살하려는 세력으로 선과 악은 분명히 나뉘지만 그 대립 양상은 전혀 전형적이지 않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옹호하는 세력인 수다족의 허랑 왕자는 허풍쟁이에다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인가 하면 어둠의 세력인 잠잠족의 제2인자 무드라는 평화를 사랑하여 단호하게 제 길을 찾는 멋진 캐릭터이다. 살만 루시디가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지었기 때문에 동화의 형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빛과 어둠, 수다족과 잠잠족, 유머와 진지함과 같은 대립항들이 각각 세상의 모든 ‘말’을 옹호하고 중흥하려는 세력과 그런 이야기들을 말살하고 비틀고 봉쇄하려는 세력을 상징하고 있는 매우 복잡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에 클라이막스가 확실하고 속도감이 있으며 루시디만의 화려한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왜 온 세계가 그의 작품 한 편 때문에 그토록 큰 소동을 겪었는지, 그리고 왜 세계적 권력자도 아닌 한낮 소설가에게 백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성찰을 줄 것이다.
총 
멀티플라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