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년을 화자로 내세워 전개되는 이 소설은 흐트러짐 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떠돌이 삼례를 통해 가부장제 질서로 표상되는 모순된 사회질서를 거부하고 야성적 생명이 넘쳐 흐르는 세계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겨울새 같은 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부엌 문설주에 매달린 홍어, 소년이 겨울마다 언덕위에서 날리던 가오리연, 박꽃같이 소복하게 내리 쌓인 하얀 눈으로 뒤덮인 적막한 산골 마을 등 아름다운 상징과 이미지들이 소설 전편을 가득 채우고 있어 한 장의 흑백사진을 연상시킨다. 또한 작가 특유의 강인한 호흡에 정밀한 감각적 표현까지 더해져 세련된 장인적 솜씨를 느끼게 하는 유려한 문장들이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빛바랜 과거의 조각들을 일순간에 섬광처럼 되살려내는 탁월함을 지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저마다의 아름답고 소중한 과거를 새삼스럽게 반추하는 시간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이순을 앞둔 중견작가가 빛나는 감수성을 되살려 써낸 <홍어>는 가볍고 감각 위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소설풍토에서 소설미학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