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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목록 / 장욱진
여기,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빛나는 가르침으로 오늘날의 저자를 있게 한 부모가 있다. 그리고 마음깊이 사랑했으면서도,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고, 뒤늦게 통회하고 아파하는 아들, 딸이 있다.
故 장욱진 화백과 각별한 부녀의 정을 나누었던 장경수씨의 글 속에는 미술관계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화가 장욱진의 생활적인 면모, 가족 간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본문 속에 담겨진 그림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김수환 추기경에게 신앙을 심어주시고, 그를 가톨릭 성직자의 길로 이끈 사람은 바로 그의 어머니.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들을 찾아 일본으로, 저 황량한 만주벌판으로, 그것도 세 번씩이나 가신 어머니 가 떠올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찡해 옴을 느낀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는 착한 목자의 사랑과 다를 바 없는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이야기한다. 소설가이며 서강대 불문학과 교수인 최윤 씨의 어머니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수학에 이르기까지 고생해서 배운 신학문을 자식교육에나 바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였다. 그의 언니가 어릴 때 심히 아파 병구완을 위해 잠시 그만두려던 사회생활이 이후 세 딸의 출생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식구가 모두 자리에 누운 늦은 밤 불꺼진 부엌에 가만히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에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우수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녀에게 어머니는‘우수의 궁전’이다. <웃는돌무용단>을 이끄는 무용가 홍신자 씨는 ‘여자는 남자와 달라 한번 혼인한 다음에는 배울 기회가 없으니 혼인 전에 남자보다 더 많이 배워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시곤 했던 어머니를 추억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바다에 찾아가 어머니 품속에 안기듯이 바다앞에 앉아있곤 한다. 홀로 먼 바다 끝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와 만난 듯하다고 한다. 화가 김점선 씨는 어린 시절, 그녀가 분명한 잘못을 했을 때에 조용히 그녀를 방으로 불러 그녀 스스로 차근차근 자신이 한 일을 얘기하도록 했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는 그녀. 후회와 뉘우침과 각오의 눈물을 어머니 앞에서 흘리면서 오래오래 울었던 그녀는 그럴 때에 어머니는 인류를 대표한 스승이고 그녀를 사랑으로 일깨워주는 지도자였다고 회고한다. 목판화가 이철수 씨의 아버지는 영화, 그림 뿐 아니라 사실 종횡무진의 박식이어서 어느 자리에서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데에 막힘이 없고, 화제가 풍부해서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현주 목사가“이야기 솜씨로 말하면 아들보다 화가의 부친인 운남 선생께서 훨씬 탁월하셨고, 난 그분의 재미있고도 유익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워서 더욱 자주 갔다”했듯이 그의 부친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야기를 나누고 차와 음식과 마음조차 나누기를 좋아했다고 전한다. 이화여대 교수 주철환 씨는 평생을 방랑벽을 버리지 못하고 낙천주의적으로 살아 서글픈 노년을 맞게 되었던 아버지를 미워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기르며 그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다만 겉에서 거리를 두고 무심히 보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눈치채지 못하고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는 이제 아버지 무덤가에 풀뽑는 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렇듯 글 속의 저자들은 마냥 어리광을 부리는 초등학생이 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하는 사춘기 소년소녀가 되기도 하고, 사랑을 찾아 훌쩍 부모의 품을 떠나는 이십대의 청춘남녀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그들 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성벽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아름다운 궁전이자, 때로는 좀 떠나보고도 싶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그들은 글만 겨우 깨우친 초등학교 학력의 부모이기도 했고, 많이 배운 지식인으로 마을을 이끄는 인물이기도 했고, 탁월한 예술가적 기질을 지녀 재미있는 선문답을 주고받던 아버지이기도 했고, 한해 열서너 번의 사대 봉제사를 지내야 하는 손귀한 집안의 외며느리이기도 했고,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었으면서도 끝내 주부로서만 머물러야 했던 어머니이기도 했으며, 따로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간 남편 대신 아버지의 노릇까지 도맡았던 꿋꿋한 여장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남다른 자식교육으로 오늘날의 저자를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광명정대함을 심어주고,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불어넣고, 자율과 책임을 가르치고, 우리 것에 대한 미덕을 알게 하였으며, 그 오래전, 여자라고 못할 일 없다며 많이 배우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아들’과 ‘딸’이라는 나무에 거름을 주며 오늘날의 저자로 성장하도록 이끈, 빛나는 가르침이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씨는 서문에서 ‘부부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면 환장하게 좋았던 일들만 새록새록 떠올라 목 놓아 슬피 울고, 부모 자식 간에 생이별을 하면 궂은일들만 굽이굽이 떠올라 통회(痛悔)하면서 운다고 들었다... 누구든지 아버지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는 다 통회한다. 그 통회는 아들딸을 거듭나게 한다’는 자기고백적 글을 썼다. 사람냄새 물씬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와도 같은 이 책과의 만남은 이들 저자들만의 주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주제이며 영원한 숙제이기도 한,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회가 될 것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