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배고픈 여우가 우연히 오리 알을 발견하고 생각하기를, ‘지금 그냥 먹기보다, 나중에 살찐 오리를 잡아먹는 게 더 낫겠지?’ 그래서 밤낮으로 오리 알을 품는데, 자꾸 뜻밖의 문제를 겪으면서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서툴고 조심스런 알 품기 끝에 예쁜 오리가 태어났는데, 더 큰 문제에 빠진다. 아기오리가 여우를 부모로 알고 재롱을 떨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린다. 마음 약한 여우는 엉뚱하게도 아기오리의 아빠가 되고 만다. 제목만 봐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이다. 자연계 먹이사슬 상식을 벗어나 동물 상호간의 감정에 길들여져 새로운 관계맺음을 이룬다는 설정 자체가 기발하면서도 어떤 내밀한 울림을 전해 준다.
주인공 여우처럼 배고픔을 참아가며 동물끼리 서로 어울려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여우 딴엔 머리를 굴려가며 오리 알을 품는 광경에선 절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여우의 입장에선 자못 진지하기만하다. 오리 알이 혹시 잘못될까 봐 조바심 내는 여우. 이유는 분명 다르지만, 부모의 지극한 사랑에서 한 치도 모자라지 않는다.
몇 차례 불안한 순간이 있었다. 그 때마다 여우가 모성 본능과 같은 기지를 발휘하여 마침내 귀여운 아기오리가 태어난다. 여우가 아기오리를 낳은 것이나 다름없다.
여우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아기오리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여우는 처음 마음먹은 대로 아기오리를 잡아먹지못한다. 왜 그랬을까?
“미련한 여우도 있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이 그림책의 이야기 구조는 참 비현실적인 모순이다.
여우가 오리 아빠가 된다거나, 육식동물이 별안간 채식동물로 바뀐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를 엮어 가는 모티브와 기발한 상상력에 매료되어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뜻밖에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어 버린 여우와 아기오리!
여우는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본능적인 식욕을 따르자니,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을 아빠로 굳게 믿는 철부지 아기오리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아기오리의 부모 노릇을 하자니, 배고픔과 타고난 식성을 견뎌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여우는 정말 본의 아니게 자신을 희생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다.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을 스스로 연출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우에 대한 선입관을 확 바꿔 버린다.
남을 속이거나 눈치 빠른 여우가 아니다. 우직하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참을성, 인내, 다시 말해, 희망을 버리지 않는 아주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림에서도 그런 흔적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귀엽고 천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한 표정. 제 딴엔 잔머리를 굴려 보는 눈동자나 먹이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주는 결연한 동작. 하지만 계획마다 실패를 반복하는 여우에게 왠지 더 정이 간다.
“그래도 함께 사는 게 아름답지!”
파스텔과 색연필의 질감을 살린 표현기법은 순진한 여우를 만드는 데 제격이다. 거기에 책장마다 여우와 배경의 상황 대비 즉, 여우 저 만치서 뛰노는 토끼들이나 주위를 맴맴 도는 새 떼들. 미련한 여우의 바보스런 행동을 조롱하는 것 같이 묘사되었다.
미련하고 바보스런 여우! 너무나 인간적인 여우를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모든 장치들은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와 가치관을 보여 주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겠다. 동화 내용처럼 우리 인간 세상도 평화와 사랑,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소망은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꿈꾸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공감의 폭을 넓히고자 주인공 여우의 입을 빌어 한 마디 던진다.
“이게 대체 행복해진 거야? 불행해진 거야?
책을 읽고 나서 우리 모두 대답해 보자. 행복일까, 불행일까 아니면 둘 다인지에 대해.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