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의 정사원으로 일하는 쿠사노 테츠야. 취업난을 피하기 위해 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덜컥 취직한 직장이 눈 돌아가게 바쁜 곳이라 미처 후회할 틈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즐겼지만 취업 후에는 장거리 출퇴근, 폭주하는 업무량, 소심한 성격으로 인한 요령부득 등으로 팍팍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의 연속이다. 원룸 맨션은 잠만 자는 곳으로, 자동차는 출퇴근 머신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런 날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늦은 퇴근길에 정신 나간 폭주 스포츠카가 치어 죽이고 도망간 어느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2류 미만 3류 이상의 평범한 대학에 다니던 평범한 대학생 요코이 료타. 노상 난투극이 다반사인 데다가 꼬맹이들까지 10살만 되면 어깨에 힘을 주고 걸어 다니는 무시무시한 동네에서 자라난 탓에 일찌감치 ‘유머와 넉살’이라는 처세술을 깨달았다. 지긋지긋한 고향에서 탈출하여 도쿄에서의 세련된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저 그런 대학에서의 무미건조한 학창생활. 그런 생활이 졸업 때까지 계속될 것만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독신 청년의 ‘불타는 투혼’을 잠재우고자 포르노테이프를 빌리러 가던 길에 정신 나간 폭주 스포츠카에 치어 죽기 전까지는…….
평범한 음악 CD처럼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정해진 순서대로 연주되는 삶을 살았더라면 스쳐지나갈 일조차 없었을 듯한 두 사람은 그 뺑소니 사고로 만났다. 눈앞의 남자가 이미 숨이 끊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인공호흡을 하는 쿠사노, 사후세계라는 건 생각도 않고 살다가 졸지에 유령 신세가 되어 웬 낯선 남자가 자기의 입술에 딥 키스를 퍼붓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 료타. 그 뜨거운 만남(?)을 인연으로, 두 남자의 희한한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실은 료타가 무작정 쿠사노에게 얹혀사는 것뿐이지만.)
처음에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생활을 즐기던 료타는 점차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점차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고향집의 부모님을 찾아가보지만 슬픔에 젖어 오열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도망치듯 돌아오기도 한다. 자신이 정말 죽어 버렸음을 절실하게 깨달은 료타는 유일하게 자기를 알아봐주는 쿠사노에게 부탁하여 뺑소니범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료타는 그 보답(?)으로 요령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는 쿠사노에게 직장 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다.
한편, 료타는 쿠사노의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고생 미나미 아이코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죽은 다음에야 취향인 여자아이를 만나다니 이렇게 억울할 데가! 그녀 곁을 맴돌던 중에 그녀의 오빠이자 역시 아르바이트생인 미나미 히로토가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회유와 협박을 통해 미나미 히로토에게서 ‘수사 협력’에 대한 OK를 받아낸다. 난데없이 나타난 유령 녀석이 어여쁜 여동생 곁을 기웃거리는 꼴을 보지 않으려고 협조를 약속한 미나미 히로토는 사실 유령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많아서 유령과 연관되는 것을 피해왔었다. 그러나 료타가 의외로 괜찮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세 사람의 콤비플레이는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뺑소니범을 찾아다니는 한편, 미나미 히로토가 예전부터 봐 왔던 동네 인근의 사연 있는 유령들을 찾아 저승으로 보내주는 세 사람. 료타는 쿠사노에게도, 미나미 히로토에게도, 그리고 유령들에게도 이런 저런 도움을 주면서 보람을 느끼며 음악 앨범의 본 트랙보다 보너스 트랙이 더 좋을 경우가 있는 것처럼 살아있었을 때보다 죽은 다음의 인생이 더 괜찮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나미 아이코와 그녀의 친구 노지리 아스카가 남몰래 만나 오던 자살 여고생의 유령이 성불하여 저승으로 떠나가던 날, 쿠사노와 료타 일행은 드디어 문제의 스포츠카를 찾아낸다. 몸을 던진 쿠사노와 미나미 히로토의 대 활약으로 뺑소니범들은 경찰에 검거되고, 소원을 성취한 료타는 그렇게 잡아보고 싶었던 미나미 아이코의 손을 맞잡은 채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채 저승으로 떠나간다.
이런저런 뒤처리를 하고 집에 돌아온 쿠사노는 쉴 틈도 없이 다시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료타를 만나기 전 같았으면 업무 후 피로 때문에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지루한 일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조그맣지만 긍정적인 변화들도 계속될 것이다. 상쾌하게 시작되는 내일의 아침과 함께.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