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생이 계획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부유하게 혹은 가난하게 태어났든 간에 많은 변화가 있고 그 과정에서 개인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희노애락을 겪게 된다. 특히 현재의 사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일상적인 삶에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심이 아닐까. 아무리 각박하고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영화, 연극,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바로 현실을 떠나 환상, 욕망과 쾌락이라는 진정제 아니 도피처가 필요해서가 아닐까? 요즘 한류열풍으로 불리는 현상도 무슨 연가에서 비롯되고 그 아류작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세상이 어려울 때 일수록 사람들은 멋진 로맨스를 너머 이루어지지 못할 로맨스에 목말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 학업에 쫓기는 10대든, 아니면 취업에 목을 메는 20, 30대든, 그리고 일에 푹 빠져 있는 40, 50대이든 과거 또는 현재에 아주 예쁜 여배우나 멋진 남자배우를 만나 첫키스를 하고 멋진 사랑에 빠지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만남이 이어져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된다는 것을 머릿속에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일시적이지만 황홀하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노팅힐은 모든 사람이 한 번은 꿈꾸어 봤음직한 욕망이란 코드를 현실화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한 번쯤 그런 욕망을 다시 갖기도 해보고,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서 스윽 웃어보거나 황당한 상상에 왜 그랬을까하고 질문을 던져 보게 하는 영화다. 즉 재미있는 영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하지만 모든 영화는 제작자, 각본가, 각본, 연기자, 제작기술자, 그리고 관객 이상의 그 무엇이다. 노팅힐은 영국 사람이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 아니면 몇몇의 지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니라면 알지도 못할, 세상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사는 별 볼일 없는 곳이다. 즉 이곳에서 1950년대 흑백차별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고,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시장을 중심으로 한 노팅힐 문화제가 유명하며, 특히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그리고 <미스터 빈>을 쓰기도 한 이 영화의 각본자인 리처드 커티스의 고향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처럼 실제로 존재하지만 각본화(dramatize)된 허구적 장소이다. 노팅힐은 평범한 이혼남인 윌리엄(휴 그랜트)이 제한된 수의 친구와 제한된 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 곳으로, 바로 내가 사는 곳이자 내 삶의 단순함을 대표하는 그런 곳이다. 이런 곳에 유명한 여배우 안나(줄리아 로버츠)가 우연히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다. 그리고 이런 우연이 윌리엄을 정말 믿기지 않는 남성판 신데렐라 또는 백설공주와 같은 해피엔딩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서양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전형이다.
노팅힐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IMF 등 많은 어려움을 겪던 1999년 하반기에 개봉되었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하루하루 지탱해가는 것이 전부였던 그런 시절에 이 영화는 유명한 각본가, 제작자, 그리고 영화배우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현실 도피적 욕망과 친숙한 동화적 구성을 통해 연예인이나 명사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와 순간적 환상(temporary desire)이라는 쾌락(pleasure)을 제공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연예산업과 오락물의 전형적인 산물로 거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가능한 것처럼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각본의 구성은 똑같은 회사에서 똑같은 작가가 만든 2001년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2003년 말에 10개의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형식으로 보여준 에서 그대로 재연된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로맨스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삶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단순화되어 이런 동화와 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의 노예가 된 것 이거나 이러한 꿈같은 로맨스가 막막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영화가 산업이요 문화라고 흔히 말하지 않던가? 그 심한 할리우드 영화의 전제적 영향 속에서도 우리영화계도 천만 이상 관객이 든 박스 오피스(Box Office)를 만들어 내고 국내에도 유수한 영화문화제가 몇 개씩 열리고 있으며,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영화를 접근하다보면 영화가 대단한 교육적 도구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흔히 외국어를 가르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언어로 된 영화들 속에는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상황과 사건들이 깃들어있고 그 각본을 보고 영화를 분석하면 좀 더 유창한 언어습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더 이상 오락이 아닌 것처럼 단순한 언어습득을 위한 도구 이상의 그 어떤 것이다. 즉 영화 안에는 다양한 역사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인 요소들이 들어있으며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사상이나 행동에 대한 인과관계 뿐만 아니라 방대한 정보와 지식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난 학습 교재인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다루면서 각 장별로 주요 어휘나 관용적 표현과 같은 언어적인 측면과 더불어 다양한 의미 만들기(meaning-making)의 일환으로써 문화적 단상 및 영화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 등이 가능한 것이다. 외국영화를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이 항상 외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 많이 보았다고 모두 다 연기자나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따라서, 책이나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자신의 학습목적에 맞게 집중해서 보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항상 듣고 보는 말과 글에 대한 세심한 분석과 깊고 반추적이며 비판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영어에 대한 언어적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과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가늠해보고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