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사시의 경계를 뛰어넘은 이 땅 민중의 삶에 대한 연애편지!!
박상률의 장시집 『하늘산 땅골 이야기』가 도서출판 문경 Book & Trans에서 출간되었다. 1990년 시와 희곡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들어선 그는 소설과 동화 등을 발표하는 등 여러 장르의 창작활동을 해왔지만 시인으로서의 시대적, 역사적 긴장감을 늘 놓치지 않았고 그런 내적 결과물이 이번 시집 『하늘산 땅골 이야기』이다. 자서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이 시집 원고를 스무 해 가까이 넣고 다녔다는 고백은 그가 이 시대를 얼마나 가슴 저리게 껴안아왔는지 짐작케 한다. 작금의 시단이 눈길을 주지 않는 역사적, 민중적 아픔을 그간 소홀히 해온‘서사시’속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의미가 자못 크다. 특히, 이번 장시집 『하늘산 땅골 이야기』는 시인이 겪었던 5, 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심리적 외상을 시화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작금의 말초적, 개인적 관심사에만 관심을 둔 시인들과 다르게 역사적 아픔을 형상화한 이번 시집은 이야기 속에 은유와 상징을 적절하게 배치시킴으로써 서사시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이념의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생이, 딸기와 사냥꾼이라는 상징적 매개체를 통해 대립을 이루면서 긴장과 재미를 더한다. 즉, 딸기로 상징되는 민중과 사냥꾼으로 상징되는 군부세력의 대립을 보여줌으로써 민중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한 이념 무장이 되어서 저항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적 삶과 인간다운 삶이 깨지면 본능적으로 저항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에는 그런 소박한 민중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5, 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인은 전남대학 4학년생이었다. 그 시대의 상흔을 안고, 나중에 살아남은 자의 고뇌를 씹으며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그의 시는 서사시이기 전에 그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고백이기도 하다. 또한 「엊저녁 꿈」 「비상이요 비상!」 「싸움질」 등 총 31편의 장시로 구성된 시들은 고향이 전라도인 시인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번 시집이 가난하고 슬픈 역사 속에서 함부로 꺾이지 않고, 역사의 상처를 오래 견딘 민중을 이야기하면서도,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각 시편 속에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비수를 거꾸로 쥐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민중의 애틋한 삶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이 시집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시집은 한마디로 가을바심을 끝내고 먹는 고봉밥처럼 따뜻하고 윤기가 흐르는 시집이다. 도외시되고 저 뒤편으로 밀려났던 서사시 속에 담아낸 역사적 아픔이 지금 우리들을 공명케 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그 의의가 남다르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