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씨 가족과 떠나는 집짓기 여행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달라져 있는 세상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숨이 가쁩니다. 느리게 걷다가는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아이들의 숨통마저 옥죄곤 합니다. 남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내달립니다. ‘바쁘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종종걸음 치는 어른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여기, 느림씨 아줌마가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느린 데다가 서두르는 걸 싫어한다는 느림씨 아줌마.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느림씨 가족은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친 데다가 도시의 나쁜 공기에 아이들이 자주 아팠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골로 가자. 시골 가서 우리집 짓고 살자.” 그렇게 느림씨 가족이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은 시작됩니다. 작가는 딸 혜인이의 입을 통해 집짓기의 전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줍니다.
함께 지은 집, 그래서 더 아름다운 우리집
시골에 자리를 잡은 지 3년. 느림씨 가족에게 드디어 집을 지을 터가 생겼습니다. 꿈에 부풀어 있는 느림씨 가족들.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을 꿈꿉니다. 그리고 나서 내린 결론은 바로 ‘흙벽돌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느림씨 가족은 땅에서 나는 흙으로 진짜배기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한장 한장 흙벽돌을 찍으면서 모두 구슬땀을 흘립니다. 마을 아저씨, 학교 선생님과 목사님, 언니, 오빠들, 아빠 친구들까지 와서 일을 거듭니다. 목수인 삼촌이 오자, 집짓기는 더욱 신이 납니다. 기둥도 바로 세우고, 서까래도 놓고, 튼튼한 지붕도 올립니다.
봄에 시작한 집짓기는 어느덧 장마철을 훌쩍 넘깁니다. 이제 전기선을 설치하고, 보일러를 놓습니다. 수도 배관도, 흙벽을 다듬는 미장일도 척척 진행됩니다. 도배도 하고 콩댐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집이 완성되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자 동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했던 고생과 기쁨을 나눕니다. 느림씨 아줌마는 책을 읽는 동안 집 짓는 과정 내내 함께했던 어린이들에게도 완성된 집을 구경시켜 줍니다. 접지된 장을 펼치면,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살림살이까지 표현된 배치도가 나타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지어진 완성된 집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 역시 책을 읽으면서 느림씨 가족들과 함께 차근차근 집을 지어나갔기 때문입니다.
얼었던 땅이 녹을 때부터 첫눈이 내릴 때까지, 느림씨 가족은 천천히 집을 짓습니다. 물을 담뿍 담은 수채 물감이 도화지에 서서히 번지듯이 그렇게 집을 짓습니다. 모두가 앞을 향해 줄달음질 칠 때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걸어가는 느림씨 가족. 느림씨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 끝나는 날, 온 마을에는 펑펑 첫눈이 내립니다. 가족과 동네 사람 모두가, 그리고 책을 보는 아이들까지 함께 지은 집, 지붕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우리집’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입니다.
삶의 진솔함이 가득 담긴 그림책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은 제3회서울일러스트레인션공모전에서 가작으로 입상한 작품입니다. 심사위원들(이성표,이억배)은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은 그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얻어맞은 듯한 감명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실제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진솔한 내용이다. 그림도 다큐멘터리로 찍듯 잔잔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주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은 지은이가 강화도로 내려가 집을 지으면서 겪었던 생생한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형 그림책입니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몇 년간 화가로서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 활동을 해 온 지은이는 실제로 집을 짓는 과정을 필름으로 담으면서 처음 그 때부터 그림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느리게 그리고 정성껏 집을 짓듯이, 작가 역시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이 그림책을 준비한 것입니다.
흙벽돌 하나 하나를 찍으면서 느꼈던 행복,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집을 짓고, 새참을 먹고, 고사를 지내면서 나누었던 따뜻한 마음들, 느리게 그러나 튼튼하게 집을 짓고 난 다음 느끼는 뿌듯함이 그대로 독자들의 가슴에 번져나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그림 한 장면 한 장면, 글 한줄 한줄에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이 한 채 지어지기까지 전 과정을 쉽고 자세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들보, 서까래, 아스팔트 슁글, 콩댐처럼 낯선 단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의 가장 큰 강점은 독자의 가슴에 선연한 인상을 남기는 그림들입니다. 지은이는 물을 최대한 활용한 붓터치로 자연과 하나가 된 시골의 푸근한 정서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느림씨 가족이 서울을 떠나던 날, 아이를 업고 뒤를 돌아보는 느림씨 아줌마의 표정은 ‘서운한’ 감정과 ‘후련한’ 감정을 모두 담고 있기에,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더합니다. 또 모두 함께 힘들여 지붕을 올리고 난 다음 지붕에 올라가 뉘엿뉘엿 해가 지는 가운데 마을을, 온 세상을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은 어떠한 서사시보다도 장중하고 장엄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장면들이 한 장 한 장만으로도 훌륭한 예술 작품입니다. 물을 담뿍 담은 작가의 붓에서 서정적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장면들은 아이들의 그림책도 ‘예술’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독자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 정서가 가득 밴 회화성 높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꿈을 안고 있는 그에게, 또 수준 높은 그림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우리에게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은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