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역에서 아버지를 찾는 오누이가 있다. 영호, 영자 두 오누이다. 영호네는 간도에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는다. 다니던 학교의 오 선생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해방 소식을 전해왔다. 감격도 잠시, 간도·만주 지역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영호네는 빨치산에 몸을 담은 첫째 영만이를 더 기다리지도 못하고 조선으로 돌아가려 한다. 정거장에 다 와서도 어머니는 집에 두고 온 칠도 하지 않은 소나무 소반을 잊지 못하고 아쉬워한다. 어머니는 소반을 되가져오기 위해 끝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 죽음을 당한다. 영호네는 정거장 앞산에 어머니를 묻고 이때 젖먹이 막내 영수마저도 숨을 거둔다. 이런 모습을 보던 마을 사람은 ‘해방값 비싸다’고 탄식한다. 처참한 일을 겪어가며 서울까지 왔지만 이국에서 고생하다 돌아온 전재민을 대하는 고국 사람들의 태도는 차갑기만 하다. 순사들의 태도도 해방 전과 다를 바 없고 거리는 더럽기만 하다. 불도 잘 붙지 않는 성냥을 두고 사람들은 이런 것이 ‘해방’이냐며 냉소한다. ‘민주주의’ 소리가 높은 가운데 정치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보통 사람이 살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해방 전에 감옥살이 하던 사람들이 다시 감옥에 가는 일이 잦더니 ‘해방 잘못됐어, 도로 고쳐 해야겠’다던 오 선생마저 감옥에 들어간다. 영호네는 무작정 전라도로 떠난다. 막연하게 농사를 짓기 위해 무턱대고 목포까지 차표를 끊어 떠난다. 이 여행길에서 오누이는 아버지마저 잃는다. 일을 당한 오누이를 돕는 사람들은 열차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 촌사람들이었다. 오누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돕는 진심에 크게 감동한다. 오누이는 찻손님 가운데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리 역에서 내려 아버지를 찾기 위해 힘쓴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결코 남에게 폐가 되고 짐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그러나 생활비는 떨어져가고 결국 일자리를 찾게 된다. 영호는 제일여관 심부름꾼으로, 영자는 여관집 언니네 아이보기로 일하게 된다. 제일여관 손님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영호를 항상 갸웃하게 만든다. ‘훌륭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제 배를 채우는 일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라고는 38선이 끝내 터지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란 제멋대로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는 사람들이다. ‘휼륭한 사람들’은 매일 술을 퍼먹으며 색시를 찾는다. 영호는 어느 날 아버지 소식, 간도 소식을 듣기 위해 전재민 시설을 찾지만 그 누추하고 흉한 꼴을 보면서 ‘해방 잘못됐어. 도로 고쳐 해야겠어’ 하는 오 선생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영자가 주인집의 구박을 받는 모습까지 보고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영호는 제일여관을 떠날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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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